평양속지(平壤續誌)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평양속지 |
한글표제 | 평양속지 |
한자표제 | 平壤續誌 |
분야 | 읍지 |
유형 | 한문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영조 |
집필자 | 성낙수 |
저편자 | 윤유 |
간행처 | |
간행년일 | 1730, 1837 |
권책수 | 5권 4책 |
사용활자 | 목판본 |
표제 | 평양속지(지)(平壤續志(誌)) |
소장처 | 규장각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평양속지(平壤續誌) |
이 책은 1730년(영조 6) 윤유(尹游, 1674~1737)가 편찬, 간행한 평양부 읍지(邑誌)다.
개설
이 책은 평안 감사(監司)로 있던 윤유가 『평양지(平壤誌)』 고복(古複)을 증보하여, 편찬한 평양의 읍지다. 표지서명은 『속평양지(續平壤誌)』 “평양지(平壤志)”로 되어 있다. 윤유는 본관이 행평(海平), 자는 백숙(伯叔), 호는 만하(晩霞)로, 『평양지』를 편찬한 윤두수(尹斗壽, 1533~1601)의 후손이다.
고복본은 같은 판본으로 내용은 같지만, 편차가 약간 다르다. 『평양지』는 제1책 권두에 ‘평양폭원총도(平壤幅員總圖), 평양관부도(平壤官府圖)’, 1730년에 감사송인명(宋寅明, 1689~1746)이 쓴 ‘속평양지서(續平壤誌序)’, ‘범례(凡例)’ 등이 붙어 있다.
지도는 『평양지』에 같은 이름의 것이 수록되어 있으나‚ 그 내용은 『평양속지』의 것이 좀 더 자세하다. 책의 내용 구성은 제1책 권1·권2‚ 제2책 권3·권4로 되어 있다. 1837년(헌종 3) 간행된 5권 4책의 책에는 권5에 비문(碑文)·중수기(重修記)·상량문(上樑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
편찬/발간 경위
『평양지』는 명종과 선조 때의 명신이자, 문장가인 윤두수가 짓고, 서문을 쓴 책인데, 그의 6세손인 윤유가 이를 보완하여 쓰고, 송인명이 서문을 쓴 『속평양지』를 합한 평양의 지리지이다.
윤두수는 『평양지』 ‘서(序)’에서, “평양은 기자(箕子)의 옛 도읍으로 천 년이 지났어도, 삼대(三代) 때의 제도를 볼 수 있는 곳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성의 북쪽 토산(兔山)은 기자의 의관(衣冠)이 묻힌 곳이고, 기자궁(箕子宮), 기자정(箕子井), 기자장(箕子杖)은 모두 고국(故國)의 구물(舊物)로 숭상할 만한 것이라 하는 등 평양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주로 기자에서 찾았다.
그는 일찍이 『기자지(箕子志)』를 찬술한 바 있고, 평양부윤으로 3년을 지냈기 때문에 이 지지를 쓸 만한 지적인 배경을 이미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지식을 9개 편(編)과 36개 유(類)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속평양지』(본문에는 『평양속지』라고 함)는 윤두수의 6세손인 윤유가 평안 감사로 나가 있으면서, 윤두수가 죽은 지 127년이 되던 해인 1727년(영조 3)에 『평양지』를 저본으로 증보하여, 편찬한 읍지(邑誌)다. 윤유는 1702년(숙종 28)에 생원이 되었고, 음보로 진천현감 등을 지냈다. 1718년(숙종 44)에 정시문과에 급제, 여러 언관직을 거쳐 대사간(大司諫)·승지(承旨)를 역임하였다. 1731년(영조 7)에는 형조판서, 1733년(영조 9)에는 의금부지사를 지냈다. 다음해 병조 판서(判書)로 동지사(冬至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와, 병조·공조·이조·예조의 판서를 지냈다.
서지 사항
5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4주쌍변이고, 반엽광곽은 23.9×17cm이다. 10행 18자의 유계, 상하내향화문어미(부동)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33.6×22.4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의 내용 구성은 제1권이 평양속지서(平壤續誌序)·강역(疆域)·분야(分野)·연혁(沿革)·성지(城池)·부방(部坊)·군명(郡名)·풍속(風俗)·형승(形勝)·산천(山川)·누정(樓亭)·사묘(祠墓)·공서(公署)·창저(倉儲)·학교(學校)·고적(古蹟)·직역(職役)·병제(兵制)·봉수(烽燧)·역체(驛遞)·교량(橋梁)·토산(土産)·토전(土田)·공부(貢賦)·교방(敎坊)·원정(院亭)·불사(佛寺)·호구(戶口) 등이다.
제2권은 인물(人物)·효열(孝烈)·문과(文科)·무직(武職)·신임군공질(辛壬軍功秩)·음사(蔭仕)·숭인전감(崇仁殿監)·무남(武南)·무열사참봉(武烈祠參奉)·연방(蓮榜)·환적(宦蹟)·서윤(庶尹)·고사(古事), 제3권은 문담(文談)·신이(新異)·잡지(雜志)·시문(詩文), 제4권은 기문류(記文類), 제5권은 비문류(碑文類)·기문류 등으로 되어 있다.
『평양지』의 체재와 내용을 기본으로 하여 동일한 내용은 “구지에 상세하다(詳舊誌).”라고 하고, 기록을 생략하였으므로, 『평양지』 편찬 이후 약 240여 년 사이의 변화를 쉽게 비교할 수 있다. 특히, 증보·보강된 내용은 각종 인물 관계 조항과 기문류이다.
제5권에는 변계량(卞季良)의 ‘기자묘비(箕子廟碑)’를 비롯하여, 기자에 관한 기록을 집결시켜 놓았다.
의의와 평가
윤두수는 일찍이 『기자지』를 찬술한 바 있고, 평양부윤으로 3년을 지냈기 때문에 이 지지를 쓸 만한 지적인 배경을 이미 갖추고 있었으며, 윤유가 이를 보완하였으므로, 평양에 관한 많은 자료를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 김경용, 「19세기말 更張期 朝鮮의 교육개혁과 『官學院錄』」, 『교육사학연구』 제18권 제1호, 교육사학연구회, 2008.
- 김양희, 「조선시대 판화에 관한 연구-민속판화를 중심으로-」, 동국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 이마무라 저·최석영 역, 『민속 인류학 자료대계 31-이조각종문헌 풍속관계자료촬요 (상)』, 민속원, 2009.
- 이은주, 「明 史臣의 平壤 題詠詩 연구」, 『한국문화』 제68호,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