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방(罷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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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시험에서 합격자 발표를 취소하는 일.

개설

과거 시험에서 방(榜)을 내어 합격자를 발표한 후 방 전체의 합격을 무효화하는 것을 말하였다. 시험 자체의 효력을 취소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조정의 논의와 왕의 재가를 거쳐 결정되었다. 문과와 무과의 경우 ‘파과(罷科)’라고도 하였다.

내용 및 특징

과거 시험에서는 합격자를 발표한 후라도 시험의 공신력이 심하게 훼손된 경우 합격자 발표를 취소한 경우들이 있었다. 시험 과정에서 시제(試題)가 부적절하였거나 시관(試官)의 관리 감독이 부실하거나 부정행위가 발생한 경우, 또 시험 자체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하였다(『중종실록』 1년 9월 5일).

대개는 합격자를 발표한 뒤에 대간(臺諫)이 시험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지적하여 파방을 요청하였다. 서울에서 시행하는 한성시나 회시보다는 지방에서 치르는 향시(鄕試)를 파방하는 사례가 더 많았는데, 지방의 시험 관리가 조금 더 허술하였기 때문이다. 한두 사람의 응시자나 시관이 야기한 문제로 전체 시험을 무효화하는 것은 그만큼 시험을 엄정하게 관리한다는 의도를 내포한 것이었다(『중종실록』 2년 7월 25일). 파방을 하면 합격자가 이미 관료로 활동하는 경우라도 자격이 소멸되어 그 신분이 합격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문과의 경우 정치적인 요인으로 이전에 시행한 과거의 합격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중종반정이 일어난 후에는 1504년(연산군 10)에 시행한 갑자년 별시(別試)를 절차와 글제에 문제에 있었다는 이유로 파방하였다가 취소한 일이 있었다. 또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 뒤에는 조광조(趙光祖) 등 사림 세력이 시행한 현량과(賢良科)를 파방하였다가 1568년(선조 1)에 다시 복구한 일이 있었다. 인조반정 후에는 광해군대 시행한 1618년(광해군 10) 식년시와 1621년 별시의 선발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파방하였다.

파방은 이미 발표한 시험의 결과를 무효화하는 것으로 시험을 다시 치러야 하는 등의 여러 문제를 야기하였다. 그 결과 1601년(선조 34)부터 책임이 있는 시관이나 응시자를 처벌하고 파방은 하지 않도록 제도화하였다(『선조실록』 38년 9월 11일). 이 조항은 『수교집록(受敎輯錄)』을 거쳐 『속대전(續大典)』에 ‘죄가 시관에게 있으면 시관을 처벌하고 죄가 응시자에게 있으면 응시자를 처벌하며 파방하지 않는다.’는 조항으로 수록되었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수교집록(受敎輯錄)』
  • 『속대전(續大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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