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천현(泰川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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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평안도 태천현 지역을 관할하던 관청이자 행정구역.

개설

태천현(泰川縣)은 1473년(성종 4)에 태천군에서 강상죄와 관련된 사건으로 인해 태천현으로 강등되어 설립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평양부 태천군이 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태천현은 1473년에 태천군이 현으로 강등되면서 설립되어 태천 일대를 관할하였다. 다른 이름으로 광화(光和), 영삭(寧朔), 연삭(連朔), 태주(泰州)라고도 불렀다.

조직 및 역할

조선초기 태주일 때는 종4품의 지군사(知郡事) 1인을 임명하였으나, 1473년에 태천현으로 강등하고는 종6품 현감 1인을 두어 현을 관할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현감과 훈도(訓導) 각 1인을 두었으나 이후에 훈도를 폐지하였다. 종6품의 현감은 지방행정관서인 현의 책임자로 수령의 임무를 수행하였고, 종9품의 훈도는 교관으로 지방 향교에서 교육을 담당하였다. 1697년(숙종 23)에는 평안도감진어사이인엽(李寅燁)이 상소를 올려 태천현의 현감으로는 항상 문관을 임명하도록 했다(『숙종실록』 23년 7월 3일). 조선후기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에 의하면 소속 관원으로는 좌수 1명, 별감 2명, 고도감(庫都監) 2명, 창감관(倉監官) 6명, 중군 1명, 병방군관 4명, 천총 2명, 파총 4명, 초관 18명, 아전 33명, 사령 27명, 관노 63명, 관비 35명이 있었다.

변천

태천현은 고려시대에 광화현(光和縣)으로 불리다가 970년(고려 광종 21)에 태주방어사(泰州防禦使)가 되었다. 이후 1231년(고려 고종 18)에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관청을 섬으로 옮겼다가 1261년(고려 원종 2)에 섬에서 나와 가주(嘉州)에 편입되었다. 1366년(고려 공민왕 15)에 무주(撫州)와 위주(渭州)를 태천과 합쳐서 태주(泰州)로 부르다가, 1381년(고려 우왕 7)에 다시 무주와 위주를 분리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지방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군·현의 이름 가운데 주(州) 자를 가진 것은 모두 산(山) 자와 천(川) 자로 고쳤는데 이때 태주가 태천군이 되었고, 지군사 1인을 두었다. 1473년에 태천에 사는 중이 아비와 두 명의 의모(義母), 그리고 누이를 죽였으므로 태천현으로 강등되었다(『성종실록』 4년 2월 4일). 1895년에 지방제도를 개편할 때 의주부 태천군이 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대전회통(大典會通)』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여지도서(輿地圖書)』
  • 이존희, 「조선초기의 수령제도」, 『역사학보』30·31 합집,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