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경(千里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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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 이상의 볼록렌즈를 맞추어서 멀리 있는 물체를 크게 보이도록 만든 장치.

개설

천리경(千里鏡)은 곧 서양의 망원경을 말한다. 일명 망원경(望遠鏡), 또는 만리경(萬里鏡)·축원경(縮遠鏡)·시원경(視遠鏡) 등으로도 불렸다. 인류 최초로 망원경에 비친 달을 본 사람은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로, 1609년에 망원경을 만들어 천체를 관측했다. 갈릴레오 망원경이 처음 국내에 들어온 것은 1631년이다.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정두원(鄭斗源)이 중국 등주에서 선교사 로드리게스를 만나 망원경을 선물로 받아 온 것이 최초였다. 갈릴레오 망원경은 천문에 관심 있던 실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던 기구이기도 했다. 특히 홍대용(洪大容)은 농수각이라는 사설 천문대를 만들어 망원경으로 월식을 관측했다.

내용 및 특징

천리경은 서양의 망원경으로 16세기 후반에 천리경의 원리와 제조법이 중국에 소개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명말청초에 중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에 의해 서양의 천문의기(天文儀器)와 함께 반입되었다. 천리경은 예수회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가 1602년 중국에 입국하면서 간제지도(間制地圖)·혼의(渾儀)·천지구고(天地球考)·시귀(時晷) 등 천문 관측 의기와 함께 들여왔다.

이후 천리경은 마테오 리치에 이어 중국에 온 두 번째 선교사인 아담 샬(Adam Schall, [湯若望])이 1622년에 신식 천문 망원경을 유럽에서 직접 가지고 왔으며, 그로부터 4년 뒤인 1626년에 시르투리(Girolamo Sirturi)가 지은 『망원경』을 한역(漢譯)하여 중국에 소개하였다. 1634년에는 아담 샬의 감독하에 제작된 첫 망원경 ‘규용(窺筩)’이 관상대(觀象臺)에 설치되기도 했다. 아담 샬은 1644년에 혼천성구(渾天星球)·지평일구(地平日晷)·원규경(遠窺鏡) 등의 천문의기도 제작해 진상하였다. 조선에는 진주사(陳奏使) 정두원이 북경에서 천리경·서포(西砲)·자명종(自鳴鐘)·염초화(焰硝花)·자목화(紫木花) 등의 물품을 가져와 바치면서 소개되었으며(『인조실록』 9년 7월 12일), 이때 천리경은 천문을 관측하고 백 리 밖의 적군을 탐지할 수 있는 물건으로 알려졌다.

변천

18세기 무렵에는 중국 북경에 간 연행사(燕行使) 중에 천리경으로 해와 달을 관측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홍대용을 비롯하여 문인 화가인 강세황(姜世晃)도 70대에 중국 사행을 가서 서양인이 그린 달 그림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고 전한다. 19세기의 실학자 최한기(崔漢綺)와 이유원(李裕元)도 천리경에 비친 달을 본 인물들이다.

강세황은 서양인이 일명 시원경이라고도 하는 천리경을 만들었는데, 이것으로 천상을 보면 해와 달과 별의 생김새를 모두 판별할 수 있고 오성(五星)의 형상 또한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유원도 『임하필기』에서 “망원경으로 달을 보니 달이 아주 가까이 있고 그 무늬는 평평하지 않고 울퉁불퉁하였다.”고 고백하였다.

참고문헌

  • 『제가역상집(諸家曆象集)』
  • 『시헌서(時憲書)』
  •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
  • 『내용삼서(內用三書)』
  • 『서운관지(書雲觀志)』
  • 『임하필기(林下筆記)』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김일권, 『하늘의 역사』, 예문서원, 2007.
  • 나일성, 『한국천문학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 남문현, 「혼천의, 자격루, 측우기」, 『한국사시민강좌』23, 1998.
  • 남문현, 『장영실과 자격루』, 서울대출판부, 2002.
  • 이은성, 『역법의 원리분석』, 정음사, 1985.
  • 전상운, 『세종문화사대계』2,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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