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경도설(持敬圖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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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 중기의 학자 포저(浦渚) 조익(趙翼, 1579~1655)이 지경(持敬)과 심학(心學)에 관한 저술을 모아서 편찬한 경학서다.

개설

이 책은 조익이 20세부터 75세 사이에 지은 ‘지경’과 ‘심학’에 관한 자신의 저술들을 한데 모아서 묶은 것으로, 그의 철학적 특징과 더불어 기호 율곡학파 안에서의 위치가 잘 드러나 있는 책이다.

조익은 성리학은 곧 심학이고, 심학의 핵심은 지경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여, 이와 관련된 여러 저술을 지었는데, 이들을 하나로 묶어, 『지경도설(持敬圖說)』을 편찬하였다. 대표적인 저술 제목과 시기를 살펴보면, 『지경도(持敬圖)』(1598년), 『심학종방도(心學宗方圖)』(1603년), 『독론재지(讀論齋志)』(1637년), 『거실명(居室銘)』(1644년), 『지경도설후(持敬圖說後)』·『심학종방후설(心學宗方後說)』(1645년), 『지경도설서(持敬圖說序)』(1647년), 『주자론경요어(朱子論敬要語)』(1653년), 『심법요어(心法要語)』(1654년) 등이 있다.

편찬/발간 경위

조익의 학문은 사승(師承)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고인(古人)의 언어에서 터득한 것이었다. 소시 적에 어떤 사람이 ‘사단칠정(四端七情)’의 설에 대해서 묻자, ‘사단은 칠정 가운데 선(善)한 것’이라고 대답하였는데, 나중에 이이가 논한 것을 확인해 본 결과 그 대답과 같았다고 한다. 그는 ‘지경’과 ‘존심(存心)’을 평생토록 근본 공부로 삼고, 『지경도설』과 『심학종방(心學宗方)』을 지어 자성(自省)하였다.

그는 마음공부인 ‘지경’에 관련된 저술뿐만 아니라, ‘심학’과 관련된 여러 저술들을 한데 묶어서 편찬한 것이다. 조익은 이 외에도 『심법(心法)』을 편찬하였는데, 그는 심학의 핵심으로 ‘경’을 통한 마음공부를 강조하였다. 이것은 한국 성리학, 특히 퇴계학파의 두드러진 학문적 특징으로 그는 기호 율곡학파 계열의 학자이면서도, 퇴계학파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좀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의 이러한 철학적 특징은 주자학의 존덕성(尊德性) 공부를 강조한 것으로, 주자학의 도문학(道問學) 공부를 강조한 계열이나, 양명심학(陽明心學)을 강조한 계열과 차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지 사항

1책(70쪽)으로 구성되어 있고, 『포저선생집(浦渚先生集)』 권19에 실려있으며, 목판본이다. 크기는 32.6×21.5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조익이 20세부터 75세 사이에 지은 ‘지경’과 ‘심학’에 관한 자신의 저술들을 한데 모아서 묶은 것으로, 그의 철학적 특징과 더불어 기호 율곡학파 안에서의 위치가 잘 드러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조익은 주자의 시문을 문학의 계보에서 정통을 잇는 것으로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였다. 문학의 계보가 도통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주자에 이르러 합치하였다고 본 것이다. 이것은 향후 조선 주자학자의 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극점(極點)을 제시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그는 문학의 원리로서 비유탁의(比喩託意)를 중시하였다. 즉 조익은, “어떤 존재이든 간에 각각 그것과 비슷한 대상이 있게 마련”이므로, 비유가 가능하다고 보았으며, 비유의 방법으로 이루어진 시문에는 탁의(託意)가 풍부하다고 여겼다. 포저가 탁의를 중시한 것은 그가 주자의 글에서 ‘미언(微言)’을 읽어내려 한 것과도 통한다. 또한 그것은 그 자신이 시문의 창작에서 도학적으로 의미 있는 내용의 탁언을 의도하였던 사실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하겠다.

조익의 시는 고작 185수가 전할 뿐이다. 그것도 영회(詠懷), 영사(詠事), 행역(行役), 증인(贈人), 수차(酬次), 송별(送別), 만사(挽詞) 등으로 분류, 편차되었고, 모두 근체시이다. 따라서 그의 시문학의 세계를 다 알기는 어렵다. 그런데 조익은 문학의 원리와 비평, 그리고 창작과 관련한 이론에서 주자의 시문 창작이나 시문 비평을 중심에 두었지만, 그렇다고 사상의 측면에서 주자학을 맹신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조익이 주장한 문통도통의 합치론이나 비유탁의 우위의 문학론은 결코 주자 자신의 논리가 아니었다. 조익은 다만 문학비평과 실제 창작에서 주자학의 한 측면을 자신의 주체적 관점에 따라 부각시키거나, 재해석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더구나 조익의 사상은 주자학으로의 수렴과 동시에 탈교조주의의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조선 사대부는 다양한 사상을 받아들여, 조선적인 체질을 만들고자, 갖가지 시도를 하였다. 조익은 바로 그러한 실험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조익은 초기에는 윤근수를 따라, 고문사(의고문)를 공부하고, 광해군 때에는 최명길・ 장유와 함께 양명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인조반정 이후에는 주자의 장구집주(章句集註)를 재해석하고 경학을 연찬하였다.

현존하는 『포저집(浦渚集)』은 앞의 표에서 보았듯이, 자편고(自編稿)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되, 상당수의 시문이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조익의 저술과 문학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그가 교유한 인물들의 문집과 관련 자료를 더욱 폭넓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심법』과 더불어 조익의 지경 및 심학에 관한 철학적 입장이 잘 드러난 저술로, 이를 통해 기호 율곡학파 안에서의 그의 위치를 잘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김종철, 「검간(黔澗) 조정(趙靖), 가휴(可畦) 조익(趙翊)의 사상과 문학 특집호: 한국진의류산문(韓國秦議類散文)의 문체특성-표문(表文)을 중심으로-」, 『동방한문학』 16권, 동방한문학회, 1999.
  • 성교진, 「가휴 조익의 유학사상」, 『범한철학』 18권, 범한철학회, 1998.
  • 조성을, 「포저(浦渚) 조익(趙翼)의 사상과 문화-포저(浦渚) 조익(趙翼)의 개혁사상」, 『한국실학연구』 14권, 한국실학학회, 2007.
  • 홍원식, 『심경부주와 조선유학』, 예문서원, 2008.
  • 홍원식 외, 『조선시대 심경부주 주석서 해제』, 예문서원,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