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현(井邑縣)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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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정읍현 |
한글표제 | 정읍현 |
한자표제 | 井邑縣 |
상위어 | 전라도(全羅道) |
동의어 | 정촌(井村), 초산(楚山) |
관련어 | 이순신(李舜臣), 입암산성(笠巖山城) |
분야 | 정치/행정/관청 |
유형 | 집단·기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정성일 |
폐지 시기 | 1895년(고종 32)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정읍현(井邑縣)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선조수정실록』 22년 12월 1일, 『선조실록』 22년 7월 28일, 『선조수정실록』 24년 2월 1일, 『현종개수실록』 15년 8월 11일, 『숙종실록』 3년 4월 9일, 『세조실록』 1년 9월 11일, 『세조실록』 3년 10월 20일, 『선조실록』 26년 12월 3일 |
전라북도 정읍시에 설치된 조선시대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정읍현은 고려시대에 고부군에 소속되었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다. 조선에 와서 현감(縣監)으로 고쳤다. 1409년(태종 9)에 정읍현이 관할해 오던 1부곡을 폐지하여 정읍현에 편입하였다. 1455년(세조 1)에 정읍현이 전라도 전주도(全州道)의 우익을 맡았다. 1457년(세조 3)에는 정읍현이 전라도 7진 가운데 하나인 부안진에 속했다. 1589년(선조 22)에 현감을 파견하였는데 초대 현감이 이순신(李舜臣)이다. 1593년(선조 26)에는 왜란을 당하여 정읍의 입암산성(笠巖山城)을 수축하였다. 1674년(현종 15)에는 자기 상전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여, 그 후속 조치로 정읍현이 폐지되고 현감이중신(李重藎)이 파직되었다. 1677년(숙종 3)에 정읍현은 원래대로 복구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시행되면서 정읍현이 폐지되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고려사』에는 고려시대 정읍현은 고부군에 소속되었으며 나중에 감무를 둔 것으로 되어 있다. 936년(고려 태조 19)에 고부군이 승격되어 영주관찰사(瀛州觀察使)로 불렸는데, 정읍현은 그 속현이 되었다. 1019년(고려 현종 10)에는 다시 고부군으로 개편되었는데, 그때도 정읍현은 고부군의 속현이었다. 조선이 건국한 후에도 이것이 이어졌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1409년(태종 9)에 도관찰사(都觀察使)윤향(尹向)이 건의하여,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현과 향·소·부곡은 거의 모두 본 고을에 합쳐졌다. 이때 정읍현이 관할해 오던 1부곡 즉 답곡(畓谷)이 폐지되어 정읍현의 직촌(直村)이 되었다.
조직 및 역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정읍현에 종6품 현감 1인과 종9품 훈도(訓導) 1인을 둔다고 되어 있다. 정읍현감은 종6품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를 겸하고 그 밑에 이·호·예·병·형·공 6방을 두었다. 정읍현은 현감 아래 향청(鄕廳)의 향임(鄕任)으로 좌수(座首)와 별감(別監) 등을 두었다. 이들은 6방을 나누어 장악하여 현감의 지방 행정을 보좌하였다. 향임은 대부분 부세의 분배와 징수, 향풍의 교정, 향리의 감찰 등을 맡았다.
1589년 12월에 정읍현에 초대 현감으로 이순신을 임용하였다(『선조수정실록』 22년 12월 1일). 그에 앞서 같은 해 7월에도 하삼도(下三道)의 지방관 임용 후보자로 그의 이름이 거론되었다(『선조실록』 22년 7월 28일). 이순신은 1591년(선조 24)에 종6품 정읍현감에서 종4품 진도군수로 옮겨 가게 되었는데, 그가 부임하기도 전에 종3품 가리포첨사에 제수되었다가 정3품직인 전라좌도의 수군절도사로 발탁되었다(『선조수정실록』 24년 2월 1일).
변천
1674년(현종 15)에 자기 상전을 시해한 죄인 법현(法玄)을 처형하였다. 그 후속 조치로 정읍현을 폐지하였으며, 현감이중신을 파직하였다(『현종개수실록』 15년 8월 11일). 3년 뒤인 1677년(숙종 3)에 유생 유진해(柳振海) 등의 상소가 받아들여져서 폐지되었던 정읍현이 복구되었다(『숙종실록』 3년 4월 9일).
1455년에는 각 도의 내지(內地)에도 거진(巨鎭)을 설치하고 주변의 여러 고을을 중·좌·우익으로 나누어서 소속을 정하였다. 이때 정읍을 전라도 전주도의 우익으로 삼았다(『세조실록』 1년 9월 11일).
1457년에 각 도의 중·좌·우익을 폐지하고 거진을 설치하였다. 이른바 진관(鎭管) 체제로 바뀌면서 전라도에는 7곳에 거진이 설치되었는데 정읍현은 부안진에 속했다(『세조실록』 3년 10월 20일).
진관 체제는 그 뒤로도 조금씩 변화를 거치면서 『경국대전』에 수록되었다. 정읍이 속한 부안진은 충좌위의 중부(中部)인 전주진관으로 편입되었다. 이로써 5개 거진을 중심으로 그 아래 여러 진에 편제된 내륙과 연해 지역의 육군과 수군이 전라도의 방위를 맡았다.
1593년에는 정읍현에 입암산성이 수축되었다. 왜란을 당하여 고성(古城)을 수축하게 한 것이다. 이 밖에도 남원의 교룡산성, 담양의 금성산성, 순천의 건달산성, 강진의 수인산성 등 전라도 각지의 산성 수축에 들어갔다(『선조실록』 26년 12월 3일).
1895년에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시행되면서 정읍현이 폐지되었다. 1896년(고종 33)에 전국 23부를 다시 13도로 개정할 때 전라남도와 전라북도가 분리되었다. 전라북도는 수부(首府)를 전주에 두었으며, 정읍군을 비롯한 26개 군으로 편성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경국대전(經國大典)』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칙령(勅令)』
- 『관보(官報)』
- 『대동지지(大東地志)』
- 『여지도서(輿地圖書)』
- 『의안·칙령(議案·勅令)』
- 박종기, 『지배와 자율의 공간, 고려의 지방사회』, 푸른역사, 2002.
- 손정묵, 『한국지방제도·정치사연구(상)-갑오경장~일제강점기-』, 일지사, 2001.
- 이수건, 『조선시대 지방행정사』, 민음사, 1989.
- 이존희, 『조선시대 지방행정제도 연구』, 일지사, 1990.
- 『전라남도지』, 전라남도지편찬위원회, 1993.
- 『전라북도지』, 전라북도, 1989.
- 『정읍시사』, 정읍시사편찬위원회, 2003.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