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여화(剪燈餘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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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우(瞿佑)의 『전등신화(剪燈新話)』가 일세를 풍미하자, 이를 모방하여 나온 전기소설집.

개설

『전등여화(剪燈餘話)』는 구우(瞿佑)의 『전등신화(剪燈新話)』가 일세를 풍미하자, 이를 모방하여 나온 전기소설집 중 대표작으로, 젊은 남녀의 진솔한 사랑이 잘 묘사되어 있어서, 훗날 명말ㆍ청초(明末淸初)의 재자가인소설(才子佳人小說ㆍ재주가 뛰어난 남자와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소설)의 출현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서지 사항

7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목판본이다. 크기는 세로 25.7cm, 가로 17.3cm이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의 저자 이정 (李禎, 1376~1451)은 자가 창기(昌祺)이며, 여릉(廬陵; 지금의 장시성[江西省] 지안현[吉安縣] 사람이다. 이정은 성조(成祖) 때의 진사 출신으로, 『영락대전(永樂大典)』의 편수(編修)에 참가할 만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재주와 학문을 드러내길 좋아하였다. 그는 방산(房山)으로 귀양 가 있을 때 『전등신화』를 보고 느끼는 바가 많았고, 우울한 심사를 달래기 위해, 『전등신화』와 동일한 체제로 유사한 전기 작품 20편을 지었다.

『전등신화』가 ‘등불의 심지를 잘라가며, 읽는 참신한 이야기’라는 뜻이니, 『전등여화』는 ‘전등신화의 남은 이야기’ 정도로 해석된다.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총 5권 2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 ‘장안야행록(長安夜行錄)’ㆍ‘청경원기(聽經猿記)’ㆍ‘월야탄금기(月夜彈琴記)’ㆍ‘하사명유풍도록(何思明遊酆都錄)’ㆍ‘양천도할원지(兩川都轄院志)’.

제2권: ‘연리수기(連理樹記)’ㆍ‘전수우설도연구기(田洙遇薛濤聯句記)’ㆍ‘청성무검록(靑城舞劍錄)’ㆍ‘추석방비파정기(秋夕訪琵琶亭記)’ㆍ‘난난전(鸞鸞傳)’.

제3권: ‘봉미초기(鳳尾草記)’ㆍ‘무평영괴록(武平靈怪錄)’ㆍ‘경노전(瓊奴傳)’ㆍ‘만정우선록(幔亭遇仙錄)’ㆍ‘호미낭전(胡媚娘傳)’.

제4권: ‘동천화촉기(洞天花燭記)’ㆍ‘태산어사전(泰山禦史傳)’ㆍ‘강묘니신기(江廟泥神記)’ㆍ‘부용병기(芙蓉屛記)’ㆍ‘추천회기(鞦韆會記)’ㆍ‘지정기인행(至正妓人行)’.

제5권: 중편소설에 해당하는 ‘가운화환혼기(賈雲華還魂記)’.

주요 작품들을 제재별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주인공들의 애정과 혼인 문제로 인한 갈등을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연리수기’, ‘난난전’, ‘봉미초기’, ‘경노전’, ‘부용병기’, ‘추천회기’, ‘가운화환혼기’ 등이 있다.

둘째, 인재 선발의 불합리를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동천화촉기’, ‘태산어사전’ 등이 있다.

셋째, 관료층의 횡포를 다룬 작품으로 ‘장안야행록’이 있다.

넷째, 유교 외의 불교ㆍ도교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과정을 다룬 작품으로 ‘청경원기’, ‘하사명유풍도록’, ‘무평영괴록’, ‘형정우선록’ 등이 있다.

작품속에는 명문장도 많은데,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사민(四民) 가운데 선비가 되지 않는다면, 농민이나 공인 아니면, 상인이 되면, 될 터인데 어찌하여 도사나 중이 되었단 말이냐?” (‘하사명유풍도록’ 중에서) 하사명은 불교와 도교를 멸시하는 인물이다. 도사나 승려를 농민이나 장인, 장사꾼보다 못한 자들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너희들은 비록 독서를 한다고 말하지만, 이치를 밝힘에 아직도 철저하지 못했구나. 귀신을 어찌 술과 고기로 사사로이 할 수 있겠느냐? 사람의 명을 어찌 지전(紙錢)으로 살 수 있단 말이냐? 내 뉘를 속이랴? 하늘을 속이랴?” (‘하사명유풍도록’ 중에서) 여러 학도들이 세속의 풍속을 따라, 하사명의 축수(祝壽)를 기원하자, 하사명이 이들에게 훈계하고 있다.

“혼약을 맺는다는 것은 의를 맺는 것과 같아서, 한 번 맺으면,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저도 다른 자매들이 부유하게 살고 있는 것을 속으로 부러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 한 번 정하면 귀신도 속일 수 없으니, 어찌 빈천하다고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추천회기’ 중에서) 사윗감으로 정했던 배주의 집안이 몰락하자, 선휘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딸 속가실리를 다른 집안에 시집을 보내려 한다. 그러자 속가실리가 당당하게 그 부당함을 역설하는 장면이다.

“죽고 사는 것은 다 정해진 것으로 귀신이 이미 알려주었는데, 약을 먹고 의원을 구한다면, 다만 스스로를 괴롭게 할 뿐이다.” (‘무평영괴록’ 중에서) 제중화는 치료를 받아보라는 아내와 아들의 권유를, 죽고 사는 문제는 하늘에 달린 일이라며, 거절하고 의원과 약을 물리친다.

“사람들이 곤궁하거나 통달하는 것, 오래 살고 일찍 죽고 흥성하고 쇠퇴하는 것, 살고 죽는 것과 묻히는 곳은 모두 이미 정해진 운명이 있어 바꿀 수 없다.(중략) 어떤 사람은 지혜와 힘으로 그것을 극복해 보고자 하지만, 곧 자신의 역량을 몰랐음을 깨닫게 된다.” (‘태산어사전’ 중에서)

의의와 평가

『전등여화』는 작품의 길이에서나 그 내용 면에서 『전등신화』와 매우 비슷하지만, 더 소극적이고, 진부한 관념을 보이고 있다. 작가는 소설 창작을 재주와 학식을 드러내는 일종의 ‘유희’로만 여겨, 많은 시와 사를 삽입함으로써, 예술적 성과 면에서 『전등신화』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소설집은 작가가 귀양 생활 중에 만들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현실적 불만이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태산어사전』에서는 이승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저승에 가서 벼슬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고, 『청성무검록』에서는 관직에 몸담고 있는 작자가 심리적으로 은둔을 원하면서도, 현실적 부귀공명의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모순된 감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전등신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젊은 남녀의 진솔한 사랑이 잘 묘사되어 있어서, 훗날 명말ㆍ청초 재자가인소설의 출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능몽초의 백화소설 ‘선휘원사녀추천회(宣徽院仕女鞦韆會)’, ‘청안사부부소제연(淸安寺夫婦笑啼緣)’은 ‘추천회기’의 내용을 개작한 것이며, 『이각박안경기』에도 여기서 영향을 받은 작품이 있다. 주청원(周淸源)의 『서호이집(西湖二集)』에도 『전등여화』에서 소재를 취한 작품이 있다.

참고문헌

  • 김수연, 「『금오신화』와 『전등여화』의 애정전기 비교 연구」, 『우리어문연구』 제32집, 우리어문학회, 2008.
  • 박재연, 「『전등여화』와 낙선재본 『빙빙뎐』 연구」, 『중국소설논총』 제4집, 한국중국소설학회, 1995.
  • 이승연, 「이창기의 『전등여화』 연구」, 석사학위논문, 고려대학교 대학원,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