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력(日課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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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서 사용한 달력.

개설

일과력(日課曆)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1년 단위의 연력(年曆)으로 한 해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 역서이다. 역서 대신 일과(日課)라고 지칭하기 시작한 것은 1426년(세종 8)부터로 역법명에 따라 대통력법(大統曆法)이 사용될 때에는 대통력(大統曆)이라 불렸고, 시헌력법(時憲曆法)이 시행되었을 때는 『시헌서(時憲書)』라 불리었다. 전통시대 일과력은 절기일 외에 택일(擇日) 및 길흉을 알아보는 용도로 많이 사용되어 오늘날의 달력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내용 및 특징

일과력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달력으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일과력으로는 『내용삼서(內用三書)』, 『대통력』, 『시헌서』 등이 있었다. 이들은 대개 1년 단위의 연력으로서 한 해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역서를 흔히 책력(冊曆), 또는 일과라고도 했다. 역서 대신 일과라고 지칭하기 시작한 것은 1426년(세종 8)부터이다(『세종실록』 8년 2월 4일). 『시헌서』는 조선후기 시헌력법을 바탕으로 만든 역서로서 그 이전에 대통력법이 사용될 때에는 대통력이라 불렸다. 시헌력법에 따라 편찬된 역법의 이름에는 시헌력과 시헌서의 두 종류가 있는데, 역(曆) 자 대신 서(書) 자를 쓴 것은 청건륭제(乾隆帝)의 이름인 홍력(弘曆)의 역자를 휘피(諱避)하기 위해서였다. 이로써 조선후기 시헌력서는 거의 『시헌서』라는 이름으로 간행되었는데, 시헌력이 시헌서로 개칭된 해는 1735년(영조 11)이다(『영조실록』 11년 10월 19일). 『시헌서』와 『대통력』은 절기의 계산법이 달라 절기가 들어가는 날짜에 대략 하루간의 차이가 있었고 하루를 100각(刻)에서 96각으로 정했다는 역법상의 큰 차이점은 있었으나, 역서의 체재와 내용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

조선시대 일과력은 신분층, 수록 내용과 크기에 따라 각기 여러 종류의 역서가 만들어졌다. 『서운관지(書雲觀志)』를 보면, 삼서(三書), 백장일과(白粧日課), 첩장일과(貼粧日課), 청장일과(靑粧日課), 중일과(中日課), 상일과(常日課), 무거일과(貿去日課), 중력(中曆), 장력(粧曆) 등 역서를 지칭하는 명칭들이 다양하게 보이는데, 삼서는 『내용삼서』를 말하며, 그 나머지 역서들은 『시헌서』를 가리킨다. 이 밖에 『이재난고(頤齋亂藁)』와 『조선왕조실록』에는 『서운관지』에 보이지 않는 소력(小曆) 등의 명칭도 발견되는데, 이 또한 『시헌서』를 가리키는 역서명이다. 『시헌서』의 명칭이 이처럼 다양하게 사용된 것은 만드는 방식이나 크기, 수록 내용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왕실과 고위 관료들이 사용한 『내용삼서』는 역서 가운데 가장 고급스러웠으며, 종류가 다양한 『시헌서』와 달리 한 가지 형태만으로 제작되었다. 『내용삼서』는 고급력으로서 크기가 가장 컸다. 현재 『내용삼서』의 크기는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략 35.5×23.3㎝ 정도에 이른다. 『시헌서』 중 가장 큰 것에 해당되는 장력의 크기가 대략 28.7×16㎝인 것으로 볼 때, 『내용삼서』는 『시헌서』에 비해 상당히 큰 역서였다.

조선후기 일과력을 대표하는 『시헌서』는 큰 책력에 해당되는 장력과 이보다는 작고 소략하게 만들어진 중력, 소력 등으로 제작되었다. 화려한 겉표지를 갖춘 장력은 다시 책을 매는 실의 종류에 따라 백장력(白粧曆)과 청장력(靑粧曆)으로 나눠지며, 그 외 첩장력이라 불리는 장력도 있었다. 이들 장력들은 고급 역서로서 대체로 왕족이나 양반들이 사용한 역서였다. 반면, 중력 또는 소력과 같이 소략하고 간단하게 만들어진 역서들은 대량으로 찍어낸 일과력으로서 일반인들이 사용한 역서인데, 이 가운데 상력(常曆)이라고도 불리는 소력이 가장 흔하게 쓰인 『시헌서』였다. 이 밖에 한 장으로 만들어진 단력(單曆)도 있었다.

왕실의 일과력이었던 『내용삼서』는 달력의 기능뿐만 아니라 천문관들이 택일이나 길흉을 알아보는 역서로 활용되었으며, 그 첫 장에는 중국 연호와 연도, 세차 간지가 적혀져 있으며 그 옆으로 정월부터 12월까지의 절기시각이 적혀져 있다. 마지막에는 그 해의 총 날짜 수를 큰 글자로 적었다. 둘째 장에는 연신방위지도(年神方位之圖)가 크게 그려져 있으며, 셋째 장부터 열넷째 장에 걸쳐 각 한 장마다 한 달의 일수(日數)가 모두 들어가는 월력(月曆)으로 구성되어 있고, 시헌법에 따라 계산한 역일(曆日)을 태음력(太陰曆)으로 배열했다. 태음력으로 배열한 날짜 위에는 합삭(合朔) 및 상현(上弦), 하현(下弦) 시각이 적혀 있고 각 달마다 그 달의 의(宜), 불의(不宜)가 적혀져 있다. 역서의 마지막 장에는 백기일(百忌日), 세두일(洗頭日), 유화일(遊禍日), 천화일(天火日) 등 길흉일이 실려 있으며, 그 옆으로 가취주당도(嫁娶周堂圖)가 그려져 있다. 주당도(周堂圖)란 주택 주위의 8방위에 각종 신이 배치된 그림이란 뜻으로 이들 신의 배치에 따라 나날의 길흉을 점친다. 가취주당도 아래에는 역서 편찬에 참여한 수술관(修述官)과 인쇄에 참여한 감인관(監印官)의 관품과 이름이 적혀져 있다.

변천

『내용삼서』의 간행이 중단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시헌서』는 양력(陽曆)의 사용과 함께 1897년(광무 1)에 명시력(明時曆)으로 개칭되면서 『시헌서』라는 이름은 1898년 명시력의 사용과 함께 역서에서 사라졌다. 양력 사용 이후 일과력은 조선민력(朝鮮民曆)을 거쳐 오늘날의 달력으로 변화되었다.

참고문헌

  • 『시헌서(時憲書)』
  • 『내용삼서(內用三書)』
  • 『서운관지(書雲觀志)』
  • 나일성, 『한국천문학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 이은성, 『曆法의 原理分析』, 정음사, 1985.
  • 정성희, 『조선후기 우주관과 역법의 이해』, 지식산업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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