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효전(懿孝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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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비(妃)였던 순명효황후의 혼전(魂殿).

개설

혼전의 이름은 혼전에 모셔진 신주의 이름이 되기도 하며 건물의 이름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황태자비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 민씨(閔氏)의 신주를 모시고 혼전 의례를 거행한 전각이라 의효전이라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삼년상을 치르고자 혼전을 마련할 때, 건물을 새로 짓지 않고 기존 건물 중에서 규모나 격이 적합한 건물을 이용하였다. 문경전(文慶殿)은 1868년(고종 5)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 경복궁의 서북쪽에 처음 세워졌으며, 왕실의 국상이 발생할 때 상례를 행하기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문경전은 1890년(고종 27) 익종 비 신정왕후(神貞王后) 조씨(趙氏)의 혼전으로 사용되었으며(『고종실록』 27년 4월 18일), 1895년에는 고종 비 명성황후(明成皇后) 민씨(閔氏)의 혼전으로 지정되었다(『고종실록』 32년 10월 15일). 이 같은 전례에 따라 1904년(광무 8) 11월 5일 황태자비 순명효황후가 승하하자, 혼전을 문경전에 설치하도록 결정했다. 고종황제가 경운궁으로 이어하면서 이 건물을 오늘날의 덕수궁인 경운궁의 경소전(景昭殿)에 옮겨지었다.

위치 및 용도

의효전을 설치하기 위해 선택된 문경전은 경복궁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문경전은 태원전(泰元殿)·회안전(會安殿)과 함께 조성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빈전과 혼전으로 사용되었다. 순명효황후의 혼전으로 선정된 이후 혼전 의례를 위해 문경전에 당가를 배설하고, 수리 공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경운궁으로 옮겨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05년(광무 9) 1월 4일 초우제를 시작으로 순명효황후의 혼전 의례가 시작되었으며, 이후 1907년(융희 1)까지 혼전 의례가 지속되었다. 혼전은 22개월 동안 의례가 행해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왕이 살아 있는 동안 비(妃)가 죽은 경우 신주를 계속 모시고 있다가 왕이 승하하여 종묘에 부묘되는 시기에 함께 신주를 종묘에 봉안할 수 있다. 따라서 순명효황후의 신주를 모시는 의효전은 순종이 종묘에 부묘되는 시점까지 유지되었다.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는 제를 올리는데, 왕세자의 가례에 고유제를 올리기도 했고, 순명효왕후가 살아 있을 때를 기준으로 육순이 된 것을 기념하여 작헌례를 행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혼전의 이름은 상례를 마치면 사라지고 원래 건물의 명칭으로 돌아와야 하지만, 의효전의 경우는 상례를 마치고도 순종의 재위 기간 동안 계속 순명효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있었다. 또한 이미 경복궁에서 경운궁으로 건물을 옮겨 왔기 때문에 ‘문경전’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의효전으로 건물의 명칭이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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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및 현황

의효전은 경복궁의 문경전을 경운궁으로 옮겨 지은 것으로, 의효전에서는 1905년부터 순명효왕후의 혼전 의례를 시행하였다. 고종황제가 별세한 뒤인 1921년 3월에 다시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겨졌다. 현재는 창덕궁에 의로전(懿老殿)이라는 이름으로 건물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 문화재청, 『창덕궁 의로전: 실측·수리보고서』, 문화재청,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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