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근문(月覲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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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때 창경궁의 통화문 북쪽에서 경모궁에 쉽게 출입하기 위해 건립한 궁문(宮門).

개설

월근문은 1779년(정조 3)에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弘化門) 북쪽에 조성한 창경궁의 동북부 궁장(宮墻)에 설치된 문이다(『정조실록』 3년 10월 10일). 왕이 경모궁에 행차할 때 가깝게 이용하려는 의도에서 조성하였다. 경모궁은 정조의 생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사당이며, 사도세자를 지칭하는 호칭이기도 하였다. 사도세자의 사당은 1764년(영조 40) 봄에 처음으로 북부(北部) 순화방(順化坊)에 세워졌고 여름에 동부 숭교방(崇敎坊)으로 옮겨져 수은묘(垂恩廟)라 불렀다(『영조실록』 40년 5월 19일). 이를 정조가 즉위하면서 사도세자의 존호(尊號)를 ‘장헌(莊獻)’이라 하고, 수은묘의 봉호(封號)를 ‘영우원(永祐園)’이라 하며, 사당을 ‘경모궁(景慕宮)’이라 하였다(『정조실록』 즉위년 3월 20일). 1776년(정조 즉위) 4월에 경모궁을 고쳐 짓기 시작하여 8월에 완료되었다.

영조는 종묘 북쪽 담과 창덕궁의 남쪽 담이 서로 닿는 곳에 문을 만들고, 초하루·보름마다 소여(小輿)를 타고 위사(衛士) 없이 가서 전배례(展拜禮)를 행했다고 하였다. 정조는 이를 전례로 하여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달에 한 번 경모궁에 배례할 때 의위(儀衛) 없이 다만 승지(承旨)와 사관(史官) 및 입직(入直)한 총부(摠府) 등만 따르게 하였다. 그리고 월근문을 세워 어버이를 그리워하는 자신의 슬픔을 펴고자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문의 자물쇠는 종묘 북쪽 담의 자물쇠 예에 따라 수직(守直)하는 내시부(內侍府)에 맡기지 말고, 승정원(承政院)에서 맡아 두고 때에 따라 여닫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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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및 용도

월근문은 창경궁의 홍화문 북쪽으로 동쪽 궁장에 설치되었다. 창경궁 동쪽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자리에 있었던 경모궁과 가까운 위치에 설치한 것이다. 경모궁은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당으로, 번거로운 행렬을 갖추지 않고 간소하고 편리하게 오가고자 하여 이 문을 건립하고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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