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예모범장(園藝模範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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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농상공부에서 원예 개량을 목적으로 뚝섬에 설치한 기관.

개설

1904년 대한제국 농상공부에서 농상공학교 설립을 준비하여 그 실습을 위한 농장시험장을 뚝섬에 설치하고자 하다가, 1905년 을사조약 이후 통감부 주도로 권업모범장을 설치하면서 농상공학교 부속 농사시험장 용지 13정보를 원예모범장으로 변경하여 활용하도록 하였다. 1906년 8월 9일 칙령 제37호로 농상공부 소속 ‘원예모범장 관제’를 발포하였다. 원예모범장은 농상공부 소속으로 장장 이하 기사 1명과 기수 3인, 서기 2명을 직원으로 두도록 하였다.

원예모범장에서는 원예 개량을 명목으로 일본인 기수와 기사를 고빙하여 가지[茄子]와 감자[馬鈴薯] 등 채소 및 개량종 포도, 배와 서양종 사과 등의 과일을 시험재배하여 개량하였다. 시험장에서 1908년까지 도입 재배한 품종은 40여 품종에 이르렀다. 일본인들이 중심이 되어 이처럼 개량품종을 도입하여 보급함에 따라 재래종·고유종들이 도태되어 현재는 찾아보기 힘들다.

위치 및 용도

원예모범장은 1906년 뚝섬에 설치되었으며 원예를 개량하는 모범을 행하도록 하였다. 원예모범장에서는 가지, 감자 등 각종 작물을 시험재배하고, 원예작물 재배강화회 등을 열어 농민들을 모아 재배에 긴요한 방법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원예모범장에서 시험재배한 종자는 1906년에 가지, 감람(甘藍), 채(菜), 콩[豆], 감자, 호박[南苽] 등이었고 이러한 상품을 일부 판매하여 수입을 올리기도 하였다. 또 과일로는 개량한 포도, 배, 서양종자 능금 등을 길러 수출할 계획도 세웠는데, 주요 수출 지역으로는 일본, 상해, 만주, 시베리아,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상정하였다. 사과는 홍옥(紅玉), 국광(國光), 유옥(柳玉), 왜금(倭錦) 등의 종자를 길렀으며, 배는 장십랑, 금촌추(今村秋), 만삼길, 태평조생(太平早生), 적룡(赤龍), 바틀렛 등 6개 품종을 시험재배하였다.

변천 및 현황

원예모범장은 농상공부 소속으로 장장 이하 기사 1명과 기수 3인, 서기 2명을 직원으로 두도록 하였다. 원예모범장장은 전·현임 농상공부 국장이 겸임하였으나 기사와 기수는 일본인을 고용했다. 원예모범장 건축비 및 토지와 물품 구입비로 7,344원 50전이 소요되었다.

원예모범장에서는 각종 채소와 과일 등의 종자를 시험재배하여 개량하고, 일부 판매하기도 하였으나 1910년 8월 ‘조선총독부권업모범장 관제’를 발포하여 임시면화재배소 및 원예모범장을 폐지하고 권업모범장에 합병하여 각각 목포 지장, 독도(纛島, [뚝섬]) 지장으로 삼게 됨에 따라 원예모범장은 권업모범장의 뚝섬 지장으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형태

원예모범장은 과수원 형태를 유지하였으며 말을 이용하여 밭을 경작하였다.

관련사건 및 일화

1909~1910년에는 관립한성고등학교, 관립교동보통학교, 보성중학교 등 각종 학교에서 관람 및 원예관광을 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대한제국관보(大韓帝國官報)』
  • 『황성신문(皇城新聞)』
  • 김도형, 「권업모범장의 식민지 농업지배」, 『한국근현대사연구』3, 1995.
  • 고바야가와 규로우(小早川九郞), 『조선농업발달사(자료편)』, 우방협회,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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