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조총(倭鳥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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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제조하여 조선에 수입된 조총(鳥銃).

개설

일본에서 제조하여 조선중기 선조대에 수입된 조총으로, 조선에서 제조한 것보다 성능이 우수하였다. 따라서 임진왜란 후 여진의 위협이 나타나자 조선은 일본과 공식, 비공식적으로 여러 차례 대량의 왜조총을 도입하였다. 일본제 조총은 성능이 우수하여 여러 차례 청에 진상품으로 바쳐지기도 하였다.

연원 및 변천

임진왜란 중 일본군이 장비한 신형 화승총인 조총의 위력에 크게 고전한 조선은 조총병인 포수(砲手) 양성에 노력하였다. 이를 위해 조총의 확보와 제작, 보급에 힘을 기울였다. 초기에는 일본군으로부터 노획한 조총을 활용하다가 이후에는 조총의 제작 기술을 알고 있는 항복한 왜군, 즉 항왜(降倭)를 통해 제작 기술을 습득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 중반에는 자체적인 조총 제작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조총은 다른 조선의 기존 화기에 비해 총신이 길고 구조가 복잡하여 단기간 내에 다량의 제작이 어려운 데다 당시 철물(鐵物)의 부족과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대량 생산이 어려웠다. 아울러 조선에서 자체 제작한 조총의 경우 기능 면에서 정교함이 일본의 조총보다 떨어지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임진왜란 직후 여진족의 침입 가능성이 높아지자 기병의 돌격을 저지하기에 유용한 조총의 대량 확보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고 이에 일본의 우수한 조총을 확보할 필요성이 나타났다.

1609년(광해군 1) 기유약조(己酉約條)의 체결로 조선과 일본의 국교가 재개되자 조선은 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일본제 조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1607년(선조 40) 교토에 파견된 조선통신사는 사카이[堺]에서 조총 500정을 구입하였다. 1620년대 이후에는 후금과의 군사적 충돌로 인해 일본제 무기 수요가 더욱 증가하였고, 대마도를 통해 많은 무기를 수입하였다. 그러나 1650년대를 전후하여 공식적인 무기 수입이 어려워짐에 따라 그 직후인 1660년대에는 일본의 무기 밀매 조직을 통해 비공식적인 일본제 조총 수입이 소규모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일본제 조총은 성능이 우수하여 여러 차례 청에 진상품으로 바쳐지기도 하였다.

형태

최초 일본의 타네가시마[種子島]에서 조총이 도입되었을 당시 규격은 총신 길이가 718㎜, 전체 길이가 1,012㎜, 구경이 14㎜였다. 이후 일본에서 국산화하여 전국 시대 후반기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제작한 조총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 표준 규격은 전체 길이가 1,300~1,350㎜이고 총신 길이가 1,000~1,050㎜이며 구경은 11~12.5㎜ 정도였다. 무게는 2~4㎏이었다. 겉모양은 곧고 두터우며 장식이 별로 없는 것이 공통점이었다. 최대 사정거리는 700m이나 통상 유효 사정거리는 100m 이내로 실전에서도 이 정도 거리에서 사격을 실시하였다. 그 위력은 50~100m에서 두께 3㎝ 정도의 널빤지를 관통시킬 수 있을 정도여서, 명중할 경우 갑옷을 입은 기병이 치명상을 입을 수 있었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만기요람』에 의하면 19세기 초 어영청에는 왜조총 14자루가 보관되어 있었다.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조총은 약 50종으로 길이는 1.2~1.8m이고 구경은 15~20㎜이다. 이들 조총 가운데 어떤 것이 조선제이고 일본제이며 중국제인지의 구분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이다. 추가적인 조사가 요구된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만기요람(萬機要覽)』
  • 『융원필비(戎垣必備)』
  • 『신기비결(神技秘訣)』
  • 戶田藤成, 『武器と防具』, 新紀元社, 1994.
  • 노영구, 「16~17세기 조총의 도입과 조선의 군사적 변화」, 『한국문화』58, 2012.
  • 윤유숙, 「17세기 조일간 일본제 무기류의 교역과 밀매」, 『사총』67, 2008.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