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형(玉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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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기옥형(璇璣玉衡)의 준말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 기구.

개설

선기옥형이 처음 기록된 것은 『서경(書經)』「순전(舜典)」인데, 여기에 순임금이 “선기옥형을 창제하사 일월오성의 천체 운행을 가지런히 하였다.”고 나와 있다. 유교문화권에서 최고로 추앙받는 요임금이 제위에 올라 제왕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무로 천문 부서의 설치와 역법의 정비, 그리고 시간의 측정과 보시를 제시한 것이다. 『서경』을 보면, “요임금은 관상과 수시에 역점을 두어 결국 1년의 날을 366일로 확정하고, 때에 따라 윤달을 삽입하는 역법을 정립함으로써 모든 정치활동의 토대를 든든히 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왕조도 요임금의 정치를 이어받아 선기옥형을 왕도의 하나로 매우 중시하였다(『세종실록』 19년 4월 15일).

내용 및 특징

선기옥형은 후대에 혼천의(渾天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전통적으로 천문의기 가운데 가장 중시되었는데, 혼천설(渾天說)이라는 우주론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천체 운행을 관측하는 기구였다. 선기옥형은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는데, 크게 육합의(六合儀)·삼신의(三辰儀)·사유의(四遊儀)라는 구형으로 된 의기가 삼중으로 연결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육합의는 지평환(地平環)·자오환(子午環)·적도환(赤道環)이라는 세 개의 고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로써 상하 사방을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육합의’라고 하였다. 육합의의 내부에 연결된 삼신의는 황도환(黃道環)·백도환(白道環) 등의 고리로 구성되어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관측하는 것이었다. 해와 달과 별을 관측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삼신의’라고 하였다. 삼신의 내부에 연결되어 있는 사유의는 적경쌍환(赤經雙環)·극축(極軸)·규관(窺管)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에 설치된 규관을 동서남북으로 움직이며 천체를 관측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유의’라고 하였다.

선기옥형의 제작은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세종 이후 조선왕조 전 기간을 걸쳐 이에 대한 보수와 개량 사업이 지속되었다. 특히 세종대에는 선기옥형을 바탕으로 혼천의를 제작하였다. 1433년(세종 15) 정초(鄭招)·박연(朴堧)·김진(金鎭) 등이 혼천의를 만들어 바쳤다(『세종실록』 15년 6월 9일).

변천

선기옥형은 목재 혹은 구리로 제작되었으며, 조선시대 모든 왕들은 선기옥형의 제도를 이해하고 제작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1657년(효종 8)에는 최유지(崔攸之), 1669년(현종 10)에는 이민철(李敏哲)과 송이영(宋以頴)이 각각 움직이는 선기옥형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제가역상집(諸家曆象集)』
  •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
  • 『서운관지(書雲觀志)』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나일성, 『한국천문학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 金祖孟, 『中國古宇宙論』, 華東師範大學出版社, 1991.
  • 楊家駱, 『中國天文曆法史料』, 鼎文書局, 1978.
  • 陳遵嬀, 『中國天文學史』1­6책, 明文書局, 1984­1990.
  • Needham, Joseph., 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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