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고(嚴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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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거둥할 때 시위 군사와 백관이 모이고 순서에 따라 해당 절차를 준비하기 위해 치는 북.

개설

조선시대에 왕이 정전에서 의례를 거행할 때나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는 시위 군사와 백관들이 미리 모여 거둥에 참여할 준비를 했다. 이 준비의 각 단계를 알리기 위해 치는 북을 엄고(嚴鼓)라고 한다. 엄은 엄숙하게 한다는 뜻이다. 모두 세 번을 울리는데 첫 번째 치는 북을 초엄(初嚴) 또는 일엄(一嚴), 두 번째 치는 북을 이엄(二嚴) 또는 재엄(再嚴), 세 번째 치는 북을 삼엄(三嚴)이라고 한다.

내용 및 특징

엄고의 시간은 하루 전에 미리 아뢰어 재결을 받았다. 출궁 시간 3~5각 전에 초엄이 울리면 노부를 준비하여 배치한다. 1각은 약 15분이다. 전정(殿庭)에서 의식을 거행할 때에는 노부를 정전 마당에 배열하고 등가(登歌)나 헌가(軒架)의 음악을 연주할 악부(樂府)를 각자의 자리에 자리 잡게 한다. 이때 문무백관은 의식에 합당한 옷을 갖추고 조당(朝堂)에 모인다(『세종실록』 오례 가례 의식 하상서의).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에는 초엄이 울리면 거둥을 따를 문무백관의 자리를 문 밖에 설치하고 여러 백관은 각각 거둥에 합당한 옷을 갖추어 입고 조당에 모인다. 두 번째 엄고가 울리면 궁문 밖에 의례에 참여하거나 거둥을 지송(祗送)할 종친, 문무백관 등이 문 밖에 모여 각자의 자리에 배열하여 선다. 전악(典樂)은 악공을 거느리고 자리에 나아가고 음악을 지휘하는 협률랑(協律郞)이 자리에 나아간다. 왕을 근접에서 호위하는 관원들이 어보(御寶)를 앞세우고 편전의 합문 밖에 나아가 준비가 되었음을 아뢰면 왕이 밖으로 나온다. 궁궐 밖으로 거둥할 때 이엄이 울리면 어가를 따를 관원들은 궐문 밖에 모이고 병조(兵曹)에서는 왕의 노부 의장을 궐문 밖에 진열한다. 삼엄이 울리면 종친과 문무관이 동쪽과 서쪽의 문을 지나 각각의 자리로 나아간다. 종소리가 그치고, 외판(外辦) 즉 밖이 모두 준비되었다고 아뢰면 왕이 여(輿)를 타고 편전에서 나와 정전으로 들어가 의례를 거행하였다(『세종실록』 오례 가례 의식 하상서의).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 삼엄이 울리면 여러 위의 소속들이 부대를 이끌고 전정에 진열하고, 여러 관원이 문외위(門外位)로 나아가며, 근접 시위할 관원들은 무기와 복색을 갖추고, 좌우 시신들이 정전으로 나아가 왕을 봉영한다. 왕의 연(輦)은 정전의 문 앞에 준비해 둔다. 왕은 여를 타고 문 밖으로 나와 연을 타고 궁궐 밖으로 나간다.

엄고는 궁문에 설치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세종대에 새로 종을 주조하여 궁문에 매달고 조회(朝會) 때에 엄고를 울리고, 새벽과 저녁에는 문 닫는 시간을 알리도록 하였다(『세종실록』 14년 4월 29일). 고종대에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기록을 참조하여 궁문 위에 종을 다시 매단 후 삼엄을 울리고 종소리가 울리면 안팎의 문이 열리게 하는 옛 규례를 복구하였다(『고종실록』 7년 9월 5일).

변천

기본적으로 엄고를 울려 시각을 알리는 것은 의례를 거행하기 위해서였다. 군령에 의해 군대를 움직일 때에는 나각(螺角)으로 시간을 알리고, 엄시각(嚴時刻) 단자는 사용하지 않고 군령에 의해서 출차(出次)하는 시간을 알렸다(『숙종실록』 43년 3월 3일). 대열 등의 의식에서 나각을 울려 시각을 알릴 때에도 세 번을 울리는데 첫 번째 나각을 초취(初吹), 두 번째를 재취(再吹), 세 번째를 삼취(三吹)라고 한다(『정조실록』 2년 9월 2일).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춘관통고(春官通考)』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