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御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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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노부(鹵簿)에 속한 왕의 말.

개설

조선시대에 왕이나 왕비, 세자와 세자빈, 세손과 세손빈은 각 지위에 해당하는 노부 의장을 갖추었는데, 지위에 따라 의장의 구성이나 규모에 큰 차이가 있었다. 왕과 세자의 의장에는 탈것으로 가마 외에 여러 필의 말이 있었는데, 왕이 탈 경우를 위해 준비한 말인 어마(御馬)와 행렬의 위엄을 보이기 위한 의장용 말인 장마(仗馬)로 구분하였다.

연원 및 변천

조선초기에는 왕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 말을 타고 가는 경우가 많았고, 노부 제도가 갖추어진 이후에도 군사 훈련을 겸한 행차를 할 때 가마 대신에 말을 탔으며, 능행을 할 때에도 말을 타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어마는 왕이 직접 타기 위한 말로서 노부 행렬에 배치한 반면, 장마는 온전히 장식용 말이다. 어마는 평상시에 사복시(司僕寺)에서 훈련시키고 관리하였다. 세종대에는 왕의 탈것이라 하여 어마가 한꺼번에 출입할 때에는 붉은 재갈을 물려 사복시 관원이 끌고 벽제(辟除)하여 예를 표하도록 했다(『세종실록』 30년 11월 8일).

형태

대가노부(大駕鹵簿)에는 좌우로 벌여 선 의장 행렬의 가운데 부분에 장마 16필과 어마 2필을 좌우로 벌려 세웠다. 법가노부(法駕鹵簿)에는 장마 12필과 어마 2필, 소가노부(小駕鹵簿)에는 장마 6필과 어마 2필이 속하였다. 어마는 안장을 갖추었으며 각각 2인이 좌우에 서서 말을 끄는데 푸른색 옷에 종색(椶色) 초립을 쓰고 운혜(雲鞋)를 착용하였다. 어마의 뒤에는 왕실의 마구간을 책임지는 사복시 관원 2인이 상복을 입고 검을 차고 따랐다. 대가노부에서 장마 16필이 앞에 서고 소여(小輿)와 소연(小輦)이 그 뒤를 따랐으며, 어마 2필은 소연과 어연(御輦)의 사이에 배치하였다(『세종실록』 오례 가례 서례 노부 대가의 노부). 법가노부와 소가노부에서도 장마의 숫자는 줄어들지만 장마와 어마, 여연(輿輦)의 배치 순서는 같았다. 전정대장(殿庭大仗)을 벌여 세울 때에는 가마는 중도에, 어마는 중도의 왼쪽과 오른쪽에 서로 마주 보도록 세우고, 장마 16필은 각 8필씩 전정의 좌우에 서로 마주 보도록 세웠다. 그러나 실제로 어마와 장마는 겉모양으로 구분되지 않았으며, 어마와 장마를 모두 어마로 칭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강제훈, 「조선전기 국왕 의장제도의 정비와 상징」, 『사총』77, 2012.
  • 김지영, 「조선후기 국왕 행차에 대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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