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兩)
주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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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표제 | 양 |
한글표제 | 양 |
한자표제 | 兩 |
하위어 | 전(錢) |
관련어 | 수(銖), 국폐(國幣) |
분야 | 경제/도량형 |
유형 | 물품·도구 |
지역 | 대한민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조선 |
집필자 | 유현재 |
용도 | 도량형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양(兩)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5년 9월 16일 |
동전 100문(文)에 해당하는 단위.
개설
양(兩)은 동전의 개수를 이르는 단위로 동전 100개를 1양으로 규정하였다. 1양의 동전은 10전(錢), 1전의 동전은 10문으로 십진법 단위로 구성되었다.
연원 및 변천
양은 고대 중국에서 쓰는 무게 단위였다. 곡물이나 금속은 무게에 따라 가치를 측정했고 이를 기준으로 교환의 기준을 삼았다. 한(漢)나라 당시 수수[黍] 1,200립(粒)을 12수(銖)로 하고, 24수를 1양으로 환산하였다. 동전 형태의 화폐가 발행되면서 1양은 동전의 무게와 개수를 세는 단위로 동시에 사용되었다(『세종실록』 5년 9월 16일). 조선후기 숙종대에 상평통보가 발행되면서 『속대전(續大典)』 중 국가 공인 화폐에 대한 내용을 규정한 국폐조(國幣條)에서는 상평통보의 무게와 개수를 ‘양’을 기준으로 표기하고 있다. 1678년(숙종 4)에 제작한 상평통보 1문의 무게는 2전 5푼(分)이고 100문은 1냥으로 규정하였다.
형태
고려시대에 최초로 관에서 주도한 화폐인 건원중보(乾元重寶)가 발행되면서 동전 모양의 화폐가 유통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발굴을 통해 확인된 고려시대의 동전들과 조선초기부터 생산한 조선통보(朝鮮通寶)부터 상평통보에 이르기까지 외형은 둥글고 가운데 사각형의 구멍이 뚫려 있는 형태는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동전이 널리 사용되면서 동전 100개를 세는 단위로 ‘양’이 사용되었다.
생활·민속 관련 사항
유통된 동전은 형태가 달랐기 때문에 무게도 동일하게 유지되지 않았다. 따라서 민간에서 동전의 가치를 표기하는 방식은 무게에 따른 표기 방법과 개수로 표기하는 방식이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맥락에 따라 그 내역을 확인해야 한다.
참고문헌
- 『만기요람(萬機要覽)』
- 『속대전(續大典)』국폐조(國幣條)
- 『한서(漢書)』율력지(律曆志)
- 원유한, 『한국화폐사-고대부터 대한제국시대까지』, 한국은행 발권국, 2006.
- 박흥수, 「이조척도표준(李朝尺度標準)에 관한 고찰」, 『도(道)와 인간과학 -이동식화갑기념논문집-』, 삼일당,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