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발휘(心經發揮)

sillok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이 책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정구(鄭逑, 1543~1620)가 송(宋)나라 진덕수(眞德秀)의 『심경(心經)』에 제가의 설을 첨가하여, 그 뜻을 적은 경전주석서다.

개설

『심경발휘(心經發揮)』는 조선 선조 때의 학자 정구가 중국 송나라 진덕수의 『심경』을 모방하여, 1570년(선조 3)에 편찬하였다. 정자(程子)·주자(朱子) 등 선유(先儒)의 말로 해석을 가하고,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 정호(程顥)의 『정성서(定性書)』, 정이(程頤)의 『호학론(好學論)』, 장재(張載)의 『서명(西銘)』, 주자의 ‘인(仁)· 성(誠)’에 관한 설 등과 정주(程朱)의 행략(行略)을 부록으로 실었다.

편찬/발간 경위

한강이 『심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 스승인 퇴계 이황(李滉)와 관련이 있었다. 이황은 『심경후론(心經後論)』을 쓸 만큼 그 책을 중시하고,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가 만난 것은 진덕수의 『심경』 원전이 아니라, 정민정(程敏政)이 새로 편집한 『심경부주(心經附註)』라는 책이었다. 그런데 편자인 정민정은 매제(賣題)나 세리(勢利) 등의 혐의를 받는 인물이면서, 주륙만동론(朱陸晩同論), 주저만년정론(朱子晩年定論)을 주장한 인물인데, 이황은 이를 각각 논의하면서, 매제나 세리 문제는 그 인물의 됨됨이에 의거하여 이를 공연한 오해로 부정했고, ‘주자만년정론’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의심을 하면서도, 준덕성(尊德性)을 중시한 주자의 본래 의도를 해명하여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키려 했다.

『심경부주』를 개편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의구심을 가졌던 이황의 미온적인 태도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정구는 새로운 『심경』의 편집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저자는 정민정의 편집 기준이 분명하지 않은 점, 내용상 정주의 중요 발언이 많이 빠진 점 등을 문제 삼으면서, 경(敬)에 관한 새로운 자료를 대량으로 편입시키고, 부록 항을 독자적으로 설정하여, 『심경』의 본문 자체를 확장하는 등 대대적인 개편을 추진했다.

그 결과 본문 이전 부분에서 양자를 비교해 보면, 저자는 우선 정민정의 두 가지 글과 정씨복심의 심학도를 삭제하고, 오직 그 자신이 작성한 ‘심경발휘서(心經發揮序)’, 진덕수의 ‘심경찬(心經贊)’과 안약우의 ‘찬부서(贊附書)’만을 남겨 놓아, 『심경』의 본래 원형에 충실하려고 했다.

다음 본문의 체계 가운데 권차의 가름에서 정구는, 권1에 『삼경(三經)』의 인용문, 『논어(論語)』와 『중용(中庸)』은 권2 안에 각각 배치했다. 권3에는 『심경』에 실린 『맹자(孟子)』의 모든 장과 『예기(禮記)』, 『대학(大學)』의 장들을 넣었다. 마지막 권4에는 주자(周子)와 정자(程子), 주자(朱子) 등 송대 제현의 글만을 배치했다. 이는 정구가 산만한 권차를 바로잡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본문 각장의 구체적인 구성 내용에서도 체제상의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정구는 『심경부주』에 나타나는 ‘부주(附註)’와 ‘안(按)’이라는 표시를 완전히 없앴다. 그리고 실제 내용에 있어서, ‘부주’에 해당하는 글은 일부만 살려서 실었고, ‘안’에 해당하는 글은 모두 삭제했다. 그리고 나서, 저자는 『심경발휘』에서 각 장의 원문 밑에 특별한 표시 없이 많은 주석을 인용했다. 새롭게 인용하고 정리하여 실은 이 부분은 사실상 표기를 하지 않았을 뿐이지, '발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저자의 『심경발휘』 본문은 『심경』의 원문과 ‘발휘’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 다음 부분에서 정구는 『심경부주』에 있는 정민정과 왕조(汪祚)의 ‘심경후서(心經後序)’, 이황의 ‘심경후론’의 세 가지 글을 모두 삭제하는 대신, 권차와는 별도로 ‘심경부록(心經附錄)’을 만들어, 주자(周子), 정자(程子), 장자(張子), 주자(朱子) 등 송대 제현의 논문과 행장 등을 실었다. 정구는 후론이나 발류(跋類)의 글을 제거하는 대신에 본문의 내용에 해당할 수 있는 장문의 글들을 실음으로써 유교적 『심경』의 본래 뜻을 살리고자 했다.

서지 사항

4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활자본(동주자본(銅鑄字本))이다. 사주쌍변이고, 반엽광곽은 24.7×17cm이다. 10행 17자의 주쌍행, 상하화문어미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35×22.8cm이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이 책은 『심경부주』의 예에 따라 편장을 동일하게 배열하고, 주해가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였으며, 부록에는 주돈이의 『태극도설』, 정호의 『정성서』, 정이의 『호학론』, 장재의 『서명』, 주희(朱熹)의 『인설(仁說)』 외에 정호와 주희의 『행장략(行狀略)』 등이 각 1편씩 수록되어 있다.

자서에서 이 책의 구성경위와 용도를 밝혔는데 “범부(凡夫)가 발심하여 성학(聖學)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라 말하고, “성인이 천지와 함께 삼재(三才)에 참찬(參贊)하는 뜻이 정연하게 기술되어 있으나 정민정의 주석이 불명확하여, 학자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므로 집록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예를 들어 성의장(誠意章)의 자겸(自謙)에 대해서 “겸(謙)은 겸(慊)으로 읽는다.”는 것과 같이 보충하여 설명하였고, 경(敬)의 한자에 대해서도 진덕수의 예를 모방하여, 상세하게 주석을 붙였다.

특히 『심경부주』에서 논란이 되었던 ‘경이직내장(敬而直內章)’과 ‘존덕성재명장(尊德性齋銘章)’은 주자의 ‘만년정론’에 대한 정구의 입장과 이에 따른 그의 학문적 연원에 대한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존덕성(尊德性)의 마음공부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비록 도문학(道問學)을 도외시하지는 않았지만, 존덕성을 본(本)으로, 도문학을 말(末)로 인식함으로써 ‘존덕성 공부’가 더욱 중요한 공부임을 강조하였다.

이는 그 중심에 퇴계학(退溪學), 즉 퇴계심학(退溪心學)이 자리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심학의 본질이자, 존덕성 마음공부의 핵심을 하나의 경(敬)으로 일관했다. 특히 이 경은 바로 의를 겸한 경, 즉 궁리공부를 전제로 한 마음공부이자, 경의 확충을 통해 드러난 것이 의라는 점에서 그의 학문이 의를 상대적으로 도외시한 이황은 물론 의를 상대적으로 중요시 한 조식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정구는 내면의 엄정함을 통해 행동의 올바름을 얻는 이른바 ‘경간(敬簡)’이란 학문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심학적 색채를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부록에는 원문에는 없지만, 내용이 소중한 송나라 학자들의 학설을 참고가 되게 하고자 뽑아 실었고, 송학의 주종인 정주의 행장을 소개하여, 학자들의 학문정진에 도움을 주고자 시도한 것이 특기할 만하다.

의의와 평가

이 책에서는 내면의 엄정함을 통해 행동의 올바름을 얻는 이른바 ‘경간(敬簡)’이란 학문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심학적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

참고문헌

  • 고영진, 「17세기초 禮學의 새로운 흐름-한백겸과 정구의 예설을 중심으로-」, 『한국학보』 제68집, 일지사, 1992.
  • 서수생, 「寒岡 鄭逑의 禮學」, 『한국의 철학』 제13호, 경북대 퇴계연구소, 1985.
  • 석당전통문화연구원, 『國譯心經』, 동아대학교 출판부, 1987.
  • 송희준, 「우리나라에 있어서 『心經』 註釋書의 사적 전개」, 『동방한문학』 제15집, 동방한문학회, 1998.
  • 조대봉·김종석 공역, 『완역 心經附註』, 이문출판사, 1991.
  • 최영성, 「寒岡 鄭逑의 學問方法과 儒學史的 位置」, 『남명학연구논총』 제5집, 남명학연구원, 1997.
  • 한상규, 「鄭寒岡의 敎育思想」, 『동방한문학』 제10집, 동방한문학회,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