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혈총(三穴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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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이 짧은 총열 세 개를 하나의 쇠자루에 연결시켜 발사체를 연속으로 사격할 수 있는 개인 화기.

내용

삼혈총은 중국에서 유래하는데, 1개의 총열에 3개의 심지 구멍을 뚫고 한 발씩 사격하는 형태였다. 이후 3개의 총열을 지닌 삼혈총으로 발달하였다. 삼혈총은 조총과 같은 화승식 점화 화기가 아니라 화포의 기능과 형태를 지닌 총통(銃筒)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삼혈총을 삼혈총통(三穴銃筒), 호포(號砲)라고도 부른다. 삼혈총은 삼혈조총(三穴鳥銃), 삼안총(三眼銃)이라고도 하였다. 삼혈조총이라고 한 것은 조선후기 조총이 도입된 이후에 조총과 유사한 총신으로 3개의 연환을 발사하여 얻은 명칭이지, 조총의 기능과 유사해서 붙여진 것은 아니다. 삼혈총은 조총처럼 화승이 연결된 방아쇠로 발사하는 것이 아니라 화승이나 화약에 불을 붙여 사격하는 무기였다. 또한 삼혈포(三穴砲)라고도 불렸는데, 구리로 만들면 동삼혈포, 쇠로 만들면 철삼혈포라고 하였다.

조선에서는 처음부터 삼혈총을 이용하였으며, 임진왜란 직후인 1593년(선조 26) 처음으로 제작되었다. 삼혈총은 주물로 제작되었으므로 재질이나 기능 면에서 조총보다 뛰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오히려 숙달된 야장(冶匠)이면 누구나 다 제조할 수 있었으므로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선조실록』 26년 12월 2일). 삼혈총의 제작에는 유철(鍮鐵)과 정철(正鐵)이 사용되었다(『광해군일기』 6년 7월 25일). 조선후기로 갈수록 삼혈총은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로 사용되기보다는 군사작전이나 훈련에서 신호를 알리는 호포(號砲)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삼혈총이 3개의 총열에서 한꺼번에 연환을 발사하여 총열이 1개인 화기보다 소리가 클 수밖에 없어서였다(『인조실록』 5년 6월 10일). 물론 전투에서도 삼혈총을 이용하기는 했다. 특히 삼혈총은 조총보다 작은 화기여서 기마병이 이용하기도 했으나 화력이 세지 못하여 거리가 조금만 멀어도 갑옷을 뚫을 수 없는 단점이 있었다. 또한 조선의 말들은 화기의 소리에 적응하는 훈련이 부족하여 놀라 달아나는 폐단이 있어서 삼혈총이 전투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적었다(『인조실록』 5년 9월 24일).

용례

臣百爾思之 只得據險淸野 馬上三穴銃 斫斧夜擊三策 問於宿將諳熟戰陣者 則皆以爲非此三策 莫能禦此賊云 臣方信而條上矣 備局回啓 乃以據險爲民力不逮 三穴銃爲火力不猛 稍遠則不能穿甲 而東國馬性不馴 易致驚擾 勢難用之(『인조실록』 5년 9월 24일)

참고문헌

  • 민승기, 『조선의 무기와 갑옷』, 가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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