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승(喇嘛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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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의 승려.

개설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가 중국을 거쳐 티베트 지역에 전파되면서 매우 독특한 티베트 불교가 출현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승려인 라마에 대해 타 불교와는 다른 깊은 존경심과 의미를 부여하면서 달라이 라마 제도를 확립하기도 했다. 티베트 불교는 동북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전해졌고 몽골에까지 전파되었는데, 13세기경에는 원의 국교가 되었다. 이에 따라 원을 통해 고려에도 티베트 불교가 유입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중국에 간 조선 사신들이 목격한 티베트 라마승의 모습이 등장한다. 조선 사신들에게 비쳐진 라마승은 매우 낯설고 괴이한 모습이었지만, 중국의 황제에게는 매우 존숭 받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내용 및 특징

(1) 티베트 불교의 연혁

라마(lama)란 티베트어로 최상자, 스승(blama)이라는 뜻이며, 이것이 산스크리트어의 구루(guru)로 번역되었다. 티베트에서 라마는 불교에 대한 깊은 지식과 수행을 갖춘 사원의 지도자나 위대한 스승에게 붙이는 경칭이었다. 중국에서는 티베트 불교를 라마교(喇嘛敎, lamaim)라 하고, 그 승려를 라마(喇嘛)라고 했다. 이것은 티베트 불교가 부처보다도 라마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티베트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된 것은 7세기 중반 라사왕국[吐藩國]을 건설한 송첸캄포왕 때 중국 당(唐)나라를 통해서였다. 이후 티송데첸왕이 불교를 국교로 정했고(761년), 불경을 번역하고 인도 불교를 유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티베트 불교는 중국과 인도 세력, 그리고 전통 종교인 본(Bon)교와의 갈등을 겪으면서 동남아시아 일대에 전파된 소승불교나 동북아로 전해진 대승불교와는 다른 독특한 전통을 확립하게 되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무엇보다도 라마에 대한 존숭이 매우 강조되어 삼귀의(三歸依)가 아닌 사귀의(四歸依)를 행한다. 즉 라마·불(佛)·법(法)·승가(僧家)에 귀의한다. 라마에 귀의한다는 것은 라마를 삼보(三寶)보다 더 우위에 두는 것으로 평가되어 티베트 불교를 라마교로 부르게 된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티베트 불교 측에서는 사람들이 석가모니 부처를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에 위대한 스승인 라마를 통해서 부처님을 보고, 중생들 속에 잠재된 불성을 일깨우기 때문에 라마를 신봉한다고 말한다. 티베트 불교에서 라마의 위치가 확고해진 것은 11세기 이후 여러 종파가 생겨나고 종교의 타락이 심해지면서부터이다. 15세기 쫑카파에 의해 엄격한 계율주의를 제창한 겔룩파(黃帽派)가 창건되고, 16세기 중엽에는 겔룩파가 티베트에서 확고한 세력을 차지하자 종교와 정치 지도자로서의 달라이 라마(Dalai Lama) 제도가 확립되었다.

(2) 티베트 불교의 교의

티베트 불교에서는 윤회 환생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원히 깨끗한 혼을 얻게 되는 존재를 활불(活佛)이라고 한다. 라마승은 이 활불이 되기 위해 정신과 육체를 바르게 하기 위한 엄격한 수행을 거듭하게 된다. 활불은 중생을 구한다는 목적을 위해 인간계에 환생할 수 있다고 한다. 죽은 뒤에도 사람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나 자비를 베풀며 신봉자를 이끈다는 것이다. 활불 중에서도 최고의 활불은 티베트의 세속적 통치자이기도 한 달라이 라마이다. 달라이 라마란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한 겔룩파의 최고 지도자에게 붙이는 칭호로 관세음보살의 화신(化身)으로 여겨진다. 현재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인도 다람살라에 티베트 임시정부를 세워놓고 있다. 그 다음의 활불은 닝마파의 최고 지도자 판첸 라마(Panchen Lama)로, 티베트인들은 판첸 라마를 서방 극락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아미타불의 화신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티베트인들이 인정한 판첸 라마는 1995년 중국에 납치된 후 생사 여부가 불분명한 상태이며, 현재 중국 정부가 새롭게 내세운 판첸 라마는 티베트인들의 인정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3) 조선시대 사료 속의 라마승

조선시대에 라마승의 존재는 청나라에 간 사신이나 그 일행들에 의해 단편적으로 알려져 있었다. 실록에서는 동지정사박종악 등이 청나라의 연경에서 치계한 내용 중에 라마승이 등장하는데, 조선의 사신 일행들이 황제의 접견을 기다릴 때 안남(安南, 베트남)·섬라(暹羅, 타이)·후장(後藏, 티베트 서북부) 세 나라의 사신도 함께 자리했다. 이때 후장의 사신으로 라마승들이 참석했다(『정조실록』 17년 2월 22일). 조선 사신들은 라마승을 붉은 비단으로 몸을 휘감고 있는 추악한 모습으로 표현하거나, 몽고인에게 신명처럼 추앙되고 또 사원을 주관하는 승려라고 기록하였다.

박지원도 『열하일기』에서 라마교에 관련된 내용을 기술하였는데, 당시 청나라 건륭제가 라마승을 스승으로 모시며 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사원을 지어주었다고 언급했다. 한편 박지원 자신은 라마승으로부터 불상을 선물 받고 매우 곤혹스러워 했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 『열하일기(熱河日記)』
  • 야마구치 즈이호·야자키 쇼켄 저, 이호근·안영길 옮김, 『티베트불교사』, 민족사, 1995.
  • 김희종, 「살아있는 티벳불교, 라마승과의 만남」, 『불교』516, 1998.
  • 양현수, 「티벳의 라마교」, 『원광』212, 1992.
  • 한기선, 「티베트 불교의 역사와 특수성」, 『금강』117, 천태종,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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