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서(令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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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왕세자가 신하에게 발급하는 명령 문서.

개설

영서(令書)는 왕세자가 대리청정을 행할 때 관찰사·방어사·유수 등에게 해당 직책에 나아가 맡은 바의 임무를 잘 수행하라는 당부의 뜻으로 내리는 왕세자의 명령서이다. 왕이 외방 관원에게 내리는 교서(敎書)에 해당한다. 영서에는 왕세자의 인장을 찍어서 발급하였고 영서의 내용은 홍문관의 관원이 지어 올렸다.

내용 및 특징

영서는 왕세자가 대리청정을 행할 때 관찰사·병사·수사 등으로 임명된 관원에게 훈유(訓諭)의 뜻으로 내리는 명령서이다. 대개 해당 직책에 나아가 부임지를 잘 다스리고 맡은 바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라는 왕세자의 명령 및 당부의 뜻이 담겨있다.

대리청정절목(代理聽政節目)에 따르면 “교서를 영서라 칭한다[敎書稱令書].”고 하였는데, 이는 왕이 내리는 교서를 대리청정기에 왕세자가 발급할 경우에는 영서로 한다는 것이다. 이 규정은 영조대 왕세손인 정조가 대리청정을 시행할 때 추가로 마련한 대리청정절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영조실록』 51년 12월 18일). 이후 순조대에 시행된 효명세자의 대리청정기에도 그대로 준용되었다(『순조실록』 27년 2월 9일).

영서의 문서 형식은 기본적으로 왕이 발급하는 교서 형식에 준하되 용어와 인장(印章)의 사용에서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 줄에는 ‘영(令)’ 자를 먼저 쓰고 영서를 수취하는 관원의 관직명과 이름을 적고 ‘서(書)’ 자를 마지막으로 기재하였다[令具銜姓名書]. 다음 줄에는 ‘왕세자께서 말씀하시기를[王世子若曰]’이라는 문구를 적는데, 왕세손이 영서를 발급할 경우에는 ‘왕세손이 말씀하시기를[王世孫若曰]’이라고 기재하였다. 영서를 발급하는 왕세자의 위호에 따라 명칭을 구별하여 표기하였다. 바로 이어서 왕세자가 관찰사·방어사·유수 등에게 해당 직책에 나아가 맡은 바의 임무를 잘 수행하라는 당부의 내용을 기재하였다. 그리고 “이에 영시하니 생각건대 마땅히 이 뜻을 알지어다[故玆令示 想宜知悉].”라는 문구로 끝맺음을 하였다. 다음 줄에는 영서를 작성하여 발급한 날짜[年號年月日]를 기재하였다. 연호 부분을 비롯하여 문서 전면에 왕세자의 인장을 찍었는데, 왕세자인 사도세자는 ‘왕세자인(王世子印)’을 찍었고 왕세손인 정조는 ‘왕세손인(王世孫印)’을 사용하였다. 왕세자의 인장 또한 발급 주체의 위호에 따라 구별하여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영서에 기재하는 내용은 홍문관의 지제교·부교리 등이 담당하여 지어 올렸다.

현재까지 알려진 영서는 왕세자가 관찰사·수어사·유수에 임명된 관원에게 훈유의 뜻으로 발급한 사명훈유영서(使命訓諭令書) 사례이다. 영조대 왕세자인 사도세자와 왕세손인 정조, 순조대 왕세자인 효명세자가 발급한 영서 사례가 남아있으며, 모두 왕세자·왕세손 등이 대리청정을 시행할 때에 종2품 이상의 각 도관찰사, 남한산성수어사, 수원부유수 등에게 발급한 경우이다.

영서는 관찰사·병사·수사·방어사·유수 등 종2품 이상의 관원에게는 왕이 내리는 교지(敎旨)·밀부유서(密符諭書)와 함께 발급하였다. 이는 대리청정기에 왕과 왕세자의 권한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왕세자에게 부여된 권한의 범위를 단편적으로 알 수 있다. 결국 왕세자에게는 종2품 이상에 대한 임명 권한, 군대를 발병할 수 있는 권한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교지와 밀부유서는 왕이 직접 발급하고, 이 권한에 구애받지 않는 영서만 왕세자가 발급하였음을 알 수 있다.

    1. 00015978_그림1_1776년(영조 52) 2월 21일 정홍순(鄭弘淳) 영서(令書)

참고문헌

  • 조미은, 「조선시대 왕세자 대리청정기 문서 연구」, 『고문서연구』 36 , 2010.
  • 조미은, 「조선시대 왕세자문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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