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빈김씨(慶嬪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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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1832년(순조 32)~1907(광무 11) = 76세]. 조선의 24대 왕인 헌종(憲宗)의 후궁.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 김재청(金在淸)은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를 지냈으며, 어머니 정부인(貞夫人) 평산 신씨(平山申氏)는 신명하(申命下)의 딸이다. 양할아버지는 김기헌(金箕憲)이고, 친할아버지는 김상익(金相翊)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상열(金相說)이다.

헌종의 후궁

김경빈(金慶嬪)은 1843년(헌종 9) 헌종의 정비였던 효현왕후(孝顯王后)가 죽고, 이듬해인 1844년(헌조 10) 새 왕비를 뽑기 위한 간택령이 내려졌을 때 삼간택까지 올랐으나 낙선된 바 있었다. 1847년(헌종 13) 여전히 헌종에게 후사가 생기지 않자 김경빈은 후궁 간택을 통해 입궐하여 경빈에 봉해지고 순화(順和)라는 궁호를 받았다.(『헌종실록』 13년 10월 20일),[『승정원일기』헌종 13년 10월 9일],[『국조보감』 권86 헌종조4 13년]

헌종은 김경빈을 각별히 총애하여 창덕궁에 그녀를 위한 낙선재(樂善齋)를 지어 자신과 김경빈의 사랑채로 사용하고, 처소로 석복헌(錫福軒)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김경빈이 입궁한 지 2년만인 1849년(헌종 15) 헌종이 사망하면서 김경빈은 궁에서 나와 지내다가, 1907년 6월 1일(양) 사망하였다. 당시 김경빈의 나이 76세였다. 고종은 김경빈의 장례를 정조(正祖)의 후궁이었던 윤화빈(尹和嬪)의 상례와 같이 지낼 것을 명하였다.(『고종실록』 44년 6월 1일)

저술

김경빈은 생전에 『국기복색소선및사절복색자장요람(國忌服色素膳─四節服色資粧要覽)』이라는 복식서를 작성하였다. 『순화궁 접초(順和宮帖草)』라고도 불리는 이 책은 역대의 국기일(國忌日)과 국기일에 입는 기복(忌服), 장신구, 신발 및 궁중에서 명절과 절기에 따라 입는 옷과 장신구에 대한 규칙이 기록되어 있어 조선 후기 궁중 복식을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이 복식서는 1996년 9월 3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묘소와 후손

김경빈의 무덤은 본래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의 휘경원(徽慶園) 경내에 있었으나,(『고종실록』 44년 6월 10일) 1949년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38-4 서삼릉 경내 후궁묘역으로 이장되었다. 1970년 서삼릉이 사적 제200호로 지정될 때 함께 지정되었다.

김경빈은 헌종과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다.

참고문헌

  • 『헌종실록(憲宗實錄)』
  • 『고종실록(高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
  • 『국조보감(國朝寶鑑)』
  • 이미선, 「조선시대 후궁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