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lation) 茶山與黃裳書簡(夜能不痛否)"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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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여황상서간첩은 다산 정약용이 제자 황상에게 보낸 32통의 편지를 묶어 만든 책이다. 이 편지들은 주로 1802년부터 1808년에 작성이 되었다. 그리고 정약용이 해배된 이후 남양주에 갔을 때도 교류의 흔적은 남아 있다. 위의 편지는 32통의 편지 중 3번째 위치한 편지이다. 편지의 주요 내용은 밤 사이의 안부를 묻고, 밀가루 풀을 가져오라는 부탁과 젓갈은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고 전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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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여황상서간첩은 다산 정약용이 제자 황상에게 보낸 32통의 편지를 묶어 만든 책이다. 이 편지들은 주로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되어 있을 때인 1802년부터 1808년에 작성이 되었다. 그리고 정약용이 해배된 이후 남양주에 갔을 때도 교류의 흔적은 남아 있다. 위의 편지는 32통의 편지 중 3번째 위치한 편지이다. 편지의 주요 내용은 밤 사이의 안부를 묻고, 밀가루 풀을 가져오라는 부탁과 젓갈은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고 전하는 글이다.  
  
 
이 편지는 구체적인 날짜가 기록되어 있지가 않아서 작성 시기가 불명하다. 하지만 편지의 내용 중 다산이 황상에게 아프지 않다면 밥 먹은 뒤 바로 오라고 말을 한 것을 본다면 정약용이 강진에 있었던 시절 중으로 생각이 된다. 서간첩의 다른 서간들과 비교해서 더 추측하자면 대략 이 편지는 1804년 4월 즈음으로 추정이 된다. 같이 수록된 편지 중 1804년 4월 황상이 학질에 걸렸을 때 정약용은 황상이 걱정되어서 보낸 편지가 수록 되어 있다. 편지의 시작이 夜能不痛否?(밤 중에 아프지는 않았는가?)로 시작되는 것을 유추한다면 아직 학질이 다 낫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를 말미암아 본다면 대략 1804년 4월 이후 아직 학질의 기운이 다 떨어지지 않았을 때에 이 편지를 황상에게 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편지는 구체적인 날짜가 기록되어 있지가 않아서 작성 시기가 불명하다. 하지만 편지의 내용 중 다산이 황상에게 아프지 않다면 밥 먹은 뒤 바로 오라고 말을 한 것을 본다면 정약용이 강진에 있었던 시절 중으로 생각이 된다. 서간첩의 다른 서간들과 비교해서 더 추측하자면 대략 이 편지는 1804년 4월 즈음으로 추정이 된다. 같이 수록된 편지 중 1804년 4월 황상이 학질에 걸렸을 때 정약용은 황상이 걱정되어서 보낸 편지가 수록 되어 있다. 편지의 시작이 夜能不痛否?(밤 중에 아프지는 않았는가?)로 시작되는 것을 유추한다면 아직 학질이 다 낫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를 말미암아 본다면 대략 1804년 4월 이후 아직 학질의 기운이 다 떨어지지 않았을 때에 이 편지를 황상에게 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017년 7월 19일 (수) 07:28 판



Introduction

Original Script

Classical Chinese English

夜能不痛否? 如不痛, 須着

油帽穿泥鞵[1], 飯後卽來

也。 或有麪糊[2], 少許持來也。

此詩, 切勿示人也。 醢鱐[3]之餽

太頻, 甚不安。 玆後勿然, 可也。

(translation)

Discussion Questions


Further Readings


References

  1. 泥鞵
  2. 麪糊
  3. 醢鱐


Trans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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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여황상서간첩은 다산 정약용이 제자 황상에게 보낸 32통의 편지를 묶어 만든 책이다. 이 편지들은 주로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되어 있을 때인 1802년부터 1808년에 작성이 되었다. 그리고 정약용이 해배된 이후 남양주에 갔을 때도 교류의 흔적은 남아 있다. 위의 편지는 32통의 편지 중 3번째 위치한 편지이다. 편지의 주요 내용은 밤 사이의 안부를 묻고, 밀가루 풀을 가져오라는 부탁과 젓갈은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고 전하는 글이다.

이 편지는 구체적인 날짜가 기록되어 있지가 않아서 작성 시기가 불명하다. 하지만 편지의 내용 중 다산이 황상에게 아프지 않다면 밥 먹은 뒤 바로 오라고 말을 한 것을 본다면 정약용이 강진에 있었던 시절 중으로 생각이 된다. 서간첩의 다른 서간들과 비교해서 더 추측하자면 대략 이 편지는 1804년 4월 즈음으로 추정이 된다. 같이 수록된 편지 중 1804년 4월 황상이 학질에 걸렸을 때 정약용은 황상이 걱정되어서 보낸 편지가 수록 되어 있다. 편지의 시작이 夜能不痛否?(밤 중에 아프지는 않았는가?)로 시작되는 것을 유추한다면 아직 학질이 다 낫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를 말미암아 본다면 대략 1804년 4월 이후 아직 학질의 기운이 다 떨어지지 않았을 때에 이 편지를 황상에게 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본 문서 중 此詩, 切勿示人也。(이 시를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말아라.)라는 문장이 있는데 여기서 언급되는 시는 학질이 떨어지라고 전해준 편지 중 같이 수록된 절학가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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