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관파천 시도

hanyang2
이동: 둘러보기, 검색

Definition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하고, 이를 빌미로 청군과 일본군이 조선에 주둔했다. 조선을 둘러싼 동아시아 정세가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그러자 조선정부는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에 거중조정을 요청하였다. 표면적 목적은 청일 군대 철수에 있었지만, 그 핵심은 제물포와 서울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조선 내정에 개입하려는 일본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일본의 왕궁 포위를 우려하였던 고종은 영국 총영사관으로 파천을 의뢰하기도 하였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class groupName partName label hangeul hanja english infoUrl iconUrl
영관파천_시도 Event 사건 영관파천 시도 영관파천 시도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영관파천_시도

Contextual Relations

source target relation attribute note
영관파천_시도 청일전쟁 영관파천 시도는 청일전쟁 직전 발생하였다.
영관파천_시도 동학농민운동 영관파천 시도는 동학농민운동 중에 발생하였다.
영관파천_시도 영국공사관 isRelatedTo 영관파천시도는 영국공사관(이때는 영사관)으로 피신하려는 고종의 시도였다.
영관파천_시도 니콜라스_오코너 isRelatedTo 영관파천시도 당시 영국공사는 니콜라스 오코너였다.
영관파천_시도 미관파천_시도 isPreviousInSequence 영관파천 시도가 실패로 끝나고 이후 미관파천 시도가 감행되었다.

Web Resource

type resource title description/caption URL
참조 한국역사연구회 나의 학위논문 – 「19세기 후반 朝鮮의 對英정책 연구 (1874~1895)」 http://www.koreanhistory.org/5376


Bibliography

type bibliographic index online resource url
단행본 이헌주, 「개항기 영국의 대한정책과 주한 영국공관」, 『개항기의 재한 외국공관 연구』, 2009.
논문 한승훈, 『19세기 후반 조선의 대영정책 연구 (1874~1895) : 조선의 균세정책과 영국의 간섭정책의 관계 정립과 균열』, 고려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5.

Notes


Semantic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