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에 서울에 들어온 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元杜尤; 1859~1916)가 처음으로 거처를 잡은 곳은 정동 1-9번지와 정동 13-1번지가 걸쳐 있는 공간(지금의 예원학교 운동장 일대)이었다. 이곳은 그에 앞서 1884년에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 미국공사관과 바로 이웃하는 정동 11번지 (지금의 중명전 일원)에 터를 잡은 호레이스 알렌(Horace Newton Allen, 安連; 1858~1932)이 마련해준 집이었다. '미국 장로교선교회의 거주단지(American Presbyterian Mission Compounds)'의 핵심구역에 해당하는 언더우드의 사택은 대한성서공회의 모체인 '성서번역위원회'(1887년)와 대한기독교서회의 모체인 '조선성교서회'(1890년)는 물론이고 새문안교회의 전신인 '정동교회'(1887년)이 탄생한 공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곳은경신학교(儆新學校)의 발상지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이 학교는1886년 5월 11일에 정동의 큰 길쪽으로 붙어 있던 언더우드의 또 다른 사랑채에서 1명의 고아로서 고아원(The Home and School for Orphan Boys)을 개설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 무렵 언더우드는 조선정부에 고아원의 설립허가를 신청하여 1885년 2월에 이에 대한 내락까지 받아둔 상태였으며, 이에 고아원을 확장하기 위해 바로 길 건너편의대지(지금의 정동 31번지)와 그 안에 들어있던 크고 작은 기와집 다섯 채도 사들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