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5(헌종 11)~1912】고종의 형으로 이희공에 봉해진 왕족. 아버지 흥선대원군 어머니 여흥부대부인 민씨, 아들 영선군(永宣君) 이준용(李埈鎔).1864년 별시 병과 급제로 규장각 대교가 되었다. 승정원 주서(注書) 등을 시작으로 도승지, 이조 참판, 1878년 형조판서, 1880년 병조 판서를 거쳐 1881년 금위대장, 시강원 좌빈객, 1882년 3월 예조 판서에 임명되었다. 1882년 이후 청에 억류된 흥선대원군을 방문, 봉양하고 1885년 같이 귀국했다. 그 뒤 10년간 운현궁에 칩거하다가 1894년 6월 흥선대원군 재집정 후 김홍집 내각의 궁내부 대신이 되었다. 흥선대원군이 장남이라는 이유로 고종을 폐하고 이재면을 왕위에 올리고자 했다는 설이 있다. 1900년 완흥군(完興君)에 책봉되었고, 1907년 보빙대사로 일본에 다녀온 후 1910년 6월 한일합병 추진단체 대한평화협회의 총재가 되었다. 이때 흥친왕(興親王)에 봉해졌다. 1910년 8월 22일 총리대신 이완용 등과 함께 황족대표로 한일합병조약 체결에 동의, '9적’의 하나가 되었다. 8월 24일 순종의 명으로 이희(李熹)로 개명하고, 8월 29일 한일합병조약 발효날 '이희공(李熹公)’에 봉해졌다. 이 '공위(公位)’로 일본 황족의 예우를 받고 전하 경칭을 받았다. 1912년 8월 1일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으나 그해 사망했고 공위는 아들 이준용에게 세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