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철종 12) ~ 1905년】. 민영환(閔泳煥). 정부의 개항 정책에 따라 영선사(領選使)로서 학도와 공장(工匠) 38명을 인솔하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홍장(李鴻章)과 7차에 걸친 회담을 하고, 그 결과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이 체결되었다. 청나라 체류 중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어윤중과 상의하여 그 결과 오장경(吳長慶)·마건충(馬建忠)이 이끄는 청나라 군대와 함께 귀국하였다.1884년 갑신정변 때 위안스카이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일본군을 공격, 정변을 끝냈다. 그 뒤 병조판서, 독판교섭통상사무가 되어 흥선대원군의 귀국을 실현시켰다. 그 뒤 기호학회 회장, 흥사단 단장, 교육구락부 부장, 대동교총회 총장으로 활약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용직과 더불어 독립을 요구하는 「대일본장서(對日本長書)」를 제출하여 저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