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고종 23)에 설립된 관립 근대학교. 조미수호조약 체결 후 미국에 파견된 보빙사 일행이 귀국해 근대학교의 설립을 요청하여 만들어졌다. 당시 외국인들은 왕립 영어학교(Royal English School) 혹은 왕립학교(Royal College)로 불렀는데, 이는 서양문명의 수용에 필요한 영어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고종이 직접 미국인 교사를 청하라고 하명하였고, 고종의 명을 받은 윤치호는 당시 초대 주미대사인 푸트 공사에게, 푸트 공사는 미 국무장관에게, 미 국부장관은 내무부 교육국장 이튼(J. Eaton)dprp에게 교사선발의 권한을 맡겼다. 교사의 신앙심을 중시여겨 뉴욕에 있는 유니언신학교(UTS, Unio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선발하였는데, 그들이 헐버트, 벙커, 길모어(그리고 그의 부인)였다. 반은 좌원과 우원 둘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좌원은 젏은 현직관리들 중에서 우원은 똑똑한 젊은 선비들 중에서 선발되어 배정되었다. 설립의도와는 다르게 성과가 좋지 못하다가 영국인 허치슨(W. F. Hutchison)에게 넘기면서 1894년 폐교되었다. 이후 한성영어학교를 거쳐 한성외국어학교로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