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고종 17) ~ 1936년】. 신채호(申采浩). 독립운동가. 역사가. 1905년 장지연의 초청으로 『황성신문』의 기자가 되었다. 1906년 양기탁의 천거로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초빙되었다. 28세 무렵, 항일비밀결사인 신민회(新民會) 조직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국채보상운동에도 참여하여 논설을 통해 적극 지원하기도 하였다. 30세 되던 해에는 신민회의 방계조직인 청년학우회를 발기하였다. 1910년 12월에 창설된 권업회에서 기관지 『권업신문』을 창간하자 주필로 활약하였다.1913년 동제사(同濟社)에 참여하였다. 1919년 북경에서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 단장이 되었다. 이승만·정한경(鄭翰景) 등의 위임통치청원은 신채호 등에 의해 반민족적인 행위로 규탄받았다. 신채호는 1922년 1월 초 상해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의에서 창조파(創造派)의 맹장으로 활약하였다. 개조파(改造派)와의 대립으로 5월 회의가 결렬되자, 한국고대사연구에 전념하였다.『조선상고사』·『조선상고문화사』·『조선사연구초』 등이 주저(主著)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