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3년(고종 10) ~ 1935년】. 이동휘(李東輝). 독립운동가. 어려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군관학교에 입학하여 졸업 후 육군 참령(參領)으로 강화 진위대를 이끌었다.1907년 7월 한일신협약에 의해 한국군이 강제로 해산되자 의병을 조직할 계획을 세우다가 잡혀 유배되었다가 미국인 선교사 벙커 덕분에 풀려 나왔다. 1911년에는 105인 사건에 연루, 투옥되었다가 무혐의로 석방되었다. 벙커와 박능일 목사를 움직여 강화도에 합일학교를 설립하였고, 개성·평양·원산 등지에도 여러 학교를 설립하였다. 1915년 경 노령(露領)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한인사회당을 조직하였다.1919년 8월 말 경에는 오영선(吳永善)을 데리고 임시정부의 국무총리에 취임하기 위해 상해에 도착하였고, 1920년 봄에 공산주의자 그룹을 조직하였다.국무총리직에 있는 동안 레닌으로부터 200만 루블의 원조를 받았으며, 그 중 40만 루블을 고려공산당 조직기금으로 쓴 일이 임시정부에 발각되어 사임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사임한 이후 시베리아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