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매순(金邁淳, 1776~1840)의 호는 대산(臺山)이고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1795년(정조19)에 약관의 나이로 정시(庭試)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검열(檢閱), 사인(舍人) 등 을 거쳐 초계문신(抄啟文臣)이 되었다. 정조의 배려로 6년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김달순의 옥사에 연루되어 20여년을 경기도 양주 미수에서 지냈다. 그 후 예조참판, 강화부 유수를 역임하였다. 문장으로는 홍석주(洪奭周)와 함께 당시 으뜸으로, 여한십대가(麗韓十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혔다. 학문으로는 한원진(韓元震)의 학설을 지지하는 호론(湖論)에 속한다. 1840년(헌종 6) 65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고종대 예조판서로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대표적인 시문집인 『대산집(臺山集)』과 『대산초고(臺山草藁)』가 전한다. 특히 『대산초고』 권7이 1800년 전후 한양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이다. 이 책은 경도잡지(京都雜誌)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와 함께 조선시대 3대 세시기에 속한다. 1911년 조선광문회(朝鮮廣文會)에서 합본으로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