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는 종법(宗法)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사당이다. 새로운 국가 건설의 목표와 이상을 보여주는 종묘는 그 주인인 국왕이 조상의 덕으로 수명(受命)한 천하의 대종자(大宗子)임을 밝혀주는 국가 최고의 상징이었다. 아울러서 사직은 천하 사람들의 생존을 좌우하는 지기(地祇, 땅귀신)와 곡신(穀神, 곡식신)을 모신 제단으로서,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조선사회의 경제적·물적 토대였다.
이 제사처는 국왕에게 신성불가침의 제사권을 부여하였다. 국가의 존망과 왕권의 성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현실성 때문에, 종사(宗社)는 국가의 대칭(代稱)으로 인식되었으며 국왕은 국가와 동일시되었다. 따라서 종묘와 사직은 조선의 국가체제를 왕권을 중심으로 확고하게 세워주는 새로운 권력구조의 상징이었다. 정궁의 좌우에서 국왕을 떠받쳐주는 두 기둥이 표방하는 외형상의 위의(威儀)는 국왕의 권위와 권력을 나타내며, 이를 과시하는 상징물을 일차 개혁 대상으로 삼아 실현한 정치적 이상 형태가 좌묘우사의 왕성 구조라 하겠다.
종묘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로부터 종법상의 질서체계에 따라 왕권을 계승한 역대 국왕을 모신 제사공간이다. 태조 6년에 간관(諫官)이 시무를 논하면서 올린 대책 중 가장 긴급한 문제로 제기한 것이 종묘에서의 제사와 가묘제였다. 그 이듬해에도 도당(都堂)에서 각 관사가 진술한 말을 채택하여 올린 건의에서, 조상 제사를 첫 번째로 거론하였다. 이러한 종묘에서 치러지는 신성한 제사는 국왕의 일원적 지배관계를 상징적이면서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기제였다. 공경대부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이 제사에 공동 참여함으로써, 국왕과 신하 혹은 민(民)은 주종적(主從的) 종법 질서관계를 형성하였다.
군신관계의 기본윤리는 효제(孝悌)이다. 국왕은 군신관계와 부자관계를 병렬로 파악하여 천하 신민에게 부친을 시봉하듯이 섬길 것을 요구했다. 국왕은 국가의 대가장(大家長)이며, 타인은 모두 자민(子民)이었다. 따라서 자민은 국왕에 대한 충성에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無違]고 했다. 이로써 가천하(家天下)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종법사회에서 종자와 족속은 신속(臣屬)과 복종(服從)으로 층화되어 있다. 이것이 최후에는 국왕을 천하의 대종으로 우뚝 서게 함으로써, 상하의 통치관계와 사회신분의 계급화를 성립시켰다. 따라서 군통과 종통이 결합된 왕권의 성립으로 모든 국가제사의 주재권은 국왕 일인에게 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