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어색했다. 명(明)의 장수 진유격(陳遊擊)의 '이 일은 우리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귀국의 대사(大事)를 위하여 한 것이므로 그 뜻을 국왕께서도 꼭 아셔야 할 것이다.'(此事非爲我也, 正爲貴國大事。 此意國王不可不知。)[1]라는 말에 대한 접반관(接伴官) 이흘(李忔)의 반응은 '대체로 유격이 사당을 건립하는 일에 매우 열성이고 감독도 친히 하면서 관왕(關王)의 영험에 대한 말을 많이 하였는데, 말이 너무 허황되어 낱낱이 아뢸 수는 없으나'(大槪遊擊於立廟一事, 極其誠悃, 親自監董, 多言關王靈驗之事, 而涉於虛誕, 不敢一一陳達矣,)[2]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