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2년 ~ 1912년】. 오카모토 류노스케(岡本柳之助). 군인. 에도 출신. 1874년 신식 군대의 육군 대위가 되어 오사카진대에서 근무. 1877년 발생한 세이난전쟁(西南戦争)에서 참모로 종군하여 공을 세우고 육군 소좌로 진급하였다. 그러나 도쿄진대에서 근무하다가 반란 주모자 혐의를 받아 1878년 재판을 받고 종신 관직 진출 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후 일련종(日蓮宗)에도 깊숙이 관여하였고, 일청무역연구소 창립에도 관계하였다. 김옥균과도 친분이 있어, 1894년에 상하이에서 그가 암살당하자 오카모토 류노스케는 직접 상하이로 건너가서 청국의 동향을 살핀 후 귀국하기도 하였다. 조선에는 1876년에 구로다 기요타카를 수행하여 온 적이 있다. 1894년 7월 23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였을 때에도 조선에 체류 중으로, 대원군을 설득하여 정계에 나가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1894년 12월 조선 정부의 궁내부고문 및 군부고문에 임명되었다. 1895년에는 주한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와 공모하여 을미사변을 일으켰다. 오카모토는 이번에도 대원군을 회유하여 입궐하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다. 을미사변 직후 일본으로 송환되어 재판을 받았지만, 히로시마 지방재판소에서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