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시. 개화기 시가의 한 유형으로 한국 근대시에 이르는 과도기적인 형태의 시가. 신시.내용‘신체시’는 ‘신시(新詩)’라는 명칭과 함께 통용되어왔으며, 다 같이 그 전대의 고시가(古詩歌)나 애국가 유형, 개화가사(開化歌辭) 및 창가에 대한 새로움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그 밖에 신시가(新詩歌) 또는 신체시가(新體詩歌)라고도 불린다. 1908년 11월 『소년 少年』 창간호에 실린 최남선의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를 기점으로 한다.
신체시는 ‘조격수의(調格隨意), 즉 ‘어수(語數)와 구수(句數)와 제목은 수의(隨意)’라는 장르 개념을 의식한 『소년』지의 ‘신체시가대모집(新體詩歌大募集)’ 광고와 『청춘』지의 ‘현상문예모집’ 광고에서 ‘신체시가’라는 용어가 쓰인 데서 시작하였다.‘신시’라는 용어는 최남선이 「구작삼편(舊作三篇)」(소년, 1909.4.)의 창작 동기를 밝힌 후기(後記)에서 ‘신시의 형식을 시험하던 시초’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 두 용어와 신체시의 기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신체시는 근대 정신의 소산으로 전통과 인습을 타파하고 서구 문화를 수용하려는 근대화운동의 표현이다. 따라서 그 이전의 전통시가와는 다른 자유율화한 산문성이 특징이다. 신체시 이전까지의 고시가·애국가 유형·창가 등이 가창을 전제로 한 율조라면, 신체시는 산문화한 자유시(自由詩)로 이행되는 과도기적인 시가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최남선의 신체시는 자아의 각성이나 탐구를 지향하기에 앞서 작자 자신이 처한 시대 상황에만 역점을 두고 있다. 그의 작품으로는「신대한소년(新大韓少年)」·「꽃두고」가 있으며, 이광수의 「말듣거라」와 현상윤의 「웅커리로서」 등이 있다.
신체시의 기교는 현상윤에 이르러 최남선이나 이광수에 비하여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전개되어갔으며, 1915년을 전후하여 김억·최승구·김여제·돌샘(石泉) 등에 이르면 자유시의 유형에 훨씬 가까운 산문시형이 시도되고 있다. 또한 개아(個我)의 서정성에다 발상법을 두고 있어 근대시에 이르는 전환기에 중요한 시적 변모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