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21대 국왕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와 헌경왕후를 합장한 추존왕릉으로 건릉-健陵과 함께 사적 제206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도는 '세자를 생각하며 추도한다'는 뜻으로 영조가 내린 시호이다. 묘역은 원래는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수은묘(垂恩墓)'로 조성되었다가,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1776년 즉위한 직후 부친의 존호를 ‘장헌(莊獻)’이라 하고 묘를 영우원(永祐園)으로 승격했으며, 1789년(정조 13)에는 수원으로 이장하고 현륭원(顯隆園)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뒤 1899년(고종 36)에는 장헌세자를 장종으로 추존하고, 현륭원을 융릉-隆陵으로 격상하였다. 같은 해에 다시 묘호를 장종에서 장조로 바꾸고 황제로 추존하여 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라 하였다. 헌경왕후는 홍봉한(洪鳳漢)의 딸로, 1744년(영조 20)에 10세의 어린 나이로 세자빈에 책봉되었다. 사도세자 사후에 영조에 의해 혜빈(惠嬪)에 봉해졌고, 정조가 즉위한 뒤 혜경궁(惠慶宮)이 되었다. 1815년(순조 15) 12월 15일 창경궁 경춘전에서 승하하여 현륭원에 안장되었다. 이후 1899년(광무 3)에 장헌세자가 장종으로 추존됨에 따라 헌경왕후가 되었으며, 같은 해에 다시 장조로 추존됨에 따라 헌경의황후(獻敬懿皇后)로 되었다. 현륭원은 비록 세자의 묘에 해당하는 원(園)이었지만, 석물의 제도와 격식은 왕릉에 버금갈 정도였다. 봉분에는 병풍석을 두르고 모란 무늬를 새겼으며, 연꽃 봉오리 모양의 인석(引石)을 설치했다. 봉분 뒤쪽으로는 3면의 곡장(曲墻; 나지막한 담)이 둘러져 있다. 석물로는 상석 1좌, 망주석 1쌍, 석양(石羊)·석호(石虎) 각 1쌍, 문인석 1쌍, 팔각 장명등 1좌, 무인석·석마(石馬) 각 1쌍이 배치되었는데, 원에는 설치하지 않는 무인석을 배치하였고, 문인석은 복두를 쓴 일반적인 왕릉형식이 아닌 금관조복을 입고 있다. 능이 조성된 언덕 아래쪽에는 정자각·비각·홍살문·재실이 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길을 참도(參道)라 하는데 정자각까지 참도 좌우 양측에 박석(薄石)이 깔려 있으며, 정자각이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능침 정면과 비껴서 있는 것이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