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은 태어난 아이의 태를 갈무리하여 그 아기의 장수와 복을 비는 독특한 안태문화를 가졌다. 이때 태를 넣은 항아리를 태항아리, 태의 주인이 태어난 날 및 태를 갈무리한 시간과 장소를 새겨 함께 묻은 돌판을 태지석이라고 한다.
이 유물은 덕혜옹주의 태를 갈무리했던 태내항아리이다. 덕혜옹주는 1912년 음력 4월 9일 출생으로, 같은 해 4월 23일에 창덕궁 후원에 태를 묻었다. 그러나 1929년(쇼와 4) 일제에 의해 서삼릉 태실이 조성될 때 그곳으로 옮겨 졌다. 덕혜옹주 태항아리의 형태는 키가 낮고 4개의 고리가 몸체 아래에 붙은 형태를 띠었다. 4개의 고리가 다른 태항아리와 달리 횡으로 붙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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