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1930년대 경성의 소비문화를 주도하고, 서구적 외양과취미·언어·의식 등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던 남성들. ‘모던걸’이라는 말은 『신여성(新女性)』 1925년 6월호에 처음 등장하였고, 1927년부터는 신문과 잡지에 모던걸과 모던보이라는 용어가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 1930년대 사전을 보면 ‘모던(modern)’이라는 단어를 ‘새로운’ 혹은 ‘근대적’이라고 표현하였다. ‘모던걸’이라면 ‘새로운 여자’ 혹은 ‘근대 여자’를 의미하였고, ‘모던보이’라면 같은 의미의 남자를 말한다.
1920년대 중반에서 1930년대 중반 사이에는 식민지 경성의 대중문화와 소비문화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진고개 중심의 남촌은 근대 상품과 화려한 건물, 네온사인으로 뒤덮인 근대 도시가 되었으며, 1921년 조지아(丁字屋)백화점을 시작으로, 1922년 미나카이(三中井)백화점, 1926년 히라다(平田)백화점 등이 세워졌고, 이와 더불어 카페와 잡화점들이 남촌에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영락정(수표교 남쪽)·명치정·본정통·용산·남대문통· 신정(장충단 아래쪽) 사동은 근대적 유흥공간으로 변모하였다.
개화기 서양 문물의 교육을 받은 신여성과 모던보이들은 이런 근대 도시의 소비적인 삶과 유행에 민감한 존재였으며, 이른바 ‘모던 생활’을 적극적으로 영위하였다. 그중에서도 모던걸과 모던보이가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일차적 특성이 바로 패션이었다. 짧은 치마와 작은 양산, 대모테 안경과 젬병 모자가 그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더불어 미국 영화의 소개와 유행도 근대적 소비문화의 부흥에 한몫을 하였다. 모던걸과 모던보이는 서구 영화에 등장하는 서양 배우들의 몸짓과 옷차림 하나하나를 흉내내서 서구문화로 자신을 치장할 때 비로소 자신이 가장 근대적일 수 있다고 믿었다. 이렇듯 활동사진과 축음기를 통해 서양 영화와 음악이 당대 모든 패션과 생각의 원천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