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광고 도입은 신문이 발행되면서 등장했다. 한국 최초의 근대광고는 1886년 2월 22일자 제4호의 한성주보에 게재되었다. 1883년 11월 20일자 한성순보 제3호 회사설(會社設)에 '광고'라는 용어가 처음 나타나지만, 실제 광고는 3년 뒤에 세창양행의 광고가 최초로 한성주보에 실린 것이다. 광고주 세창양행(世昌洋行)은 독일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무역상으로 홍콩을 중심으로 중국의 상해와 천진, 일본의 고베, 그리고 인천에 지점을 설립(1884년)하고 무역업을 하고 있던 터였다.
광고는 쇠가죽, 호랑이가죽, 여우가죽 등과 사람 머리털, 호랑이 발톱 등을 사들이고 자명종 시계, 뮤직박스, 서양 천, 성냥 등을 판다는 내용을 실었다. 도안이나 사진은 없는 활자만으로 이루어진 광고였다. 제목 ‘덕상(德商) 세창양행(世昌洋行) 고백(告白)’ 에서 덕상은 독일 상인이라는 뜻이었고, 고백은 광고의 중국식 표현이었다. 당시 신문광고에서 흔히 보이는 고백은 '회사와 제품에 대해 소비자에게 숨김없이 말한다'는 뜻으로도 통용되었다. 이것이 한일합방 이후에 일본정부가 한국인의 신문발행을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널리 알린다는 의미의 '광고'라는 용어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한편, 한성주보와 달리 1896년 창간된 독립신문은 '광고'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고, 순한글광고가 처음 등장했으며, 정기적으로 광고를 게재한 첫 신문이다. 독립신문은 광고에 대한 계몽역할을 하고 현대적 의미의 광고단가를 정하기도 했다. 1899년 6월 1일자 국문판 독립신문을 보면, 1단 28행 기준으로 40원(1년), 24원(6개월), 5월(1개월), 1원 50전(1주), 50전(1회)이었다. 장기 게재시 요금을 우대해주었다. 1899년 11월 14일에 황성신문에는 최초의 전면광고인 '영국산 소다' 광고가 실렸다.그 후 광고는 급속히 발전해서 1906년에는 일본전보통신사가 광고대행업을 시작했고, 1910년에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광고회사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