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광무 5) 7월 함녕전에서 고종황제의 오순을 기념하여 올린 잔치. 이때 외진연과 내진연, 야진연 그리고 황태자의 회작(會酌)과 야연(夜讌) 등이 거행되었다. 관련 의궤에는 진연에 대한 도식과 의주, 기용, 찬품, 재용 등을 상세히 기록해놓았다. 1900년 5월 23일 황태자가 내년은 고종황제의 보령이 오순이 되는 해로서, 조종의 전례를 따라 성절일을 진하하는 내외 진찬을 윤허해 줄 것을 상소하였다. 고종이 이를 허락하지 않자, 다시 1901년 5월 1일 황태자가 백관 이끌고서 정청(庭請)하여 허락을 받고 진연청이 꾸려졌다.
진연 장소는 함녕전으로 정해졌다. 함녕전 동서에 온돌과 대청, 동행각을 꾸미고, 보계(補階)와 죽난간(竹欄干), 우구(雨具), 차양(遮陽), 유둔차일(油芚遮日), 교창(交窓) 등 진연을 위한 건물 수리와 물품준비가 차근차근 행해졌다. 대전의 외진연은 1901년 7월 26일 묘시, 내진연은 7월 27일 진시, 야진연은 역시 같은 날 해시에 함녕전에서 설행하였다. 황태자 회작은 7월 29일 진시, 야연은 같은 날 해시에 함녕전에서 설행하였다. 외진연과 내진연을 위한 습의도 3~6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진연청은 장례원에 설치하였다. 진연청 당상은 민영휘, 김성근 등이 임명되었다. 진연을 마친 후에는 진연도병(進宴圖屛) 6좌(坐)가 제작되었으며, 당상 이하에게 계병(契屛)을 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