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 1934년】 실업가. 경성 일본인사회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인물. 1884년 오사카에 위치한 신바라상점(新原商店)에서 조선과의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부산지점과 인천출장소를 왕래하였다. 신바라상점이 파산하자 인천 소재 상점의 점원으로 일하다가 1884년 경성수비대에 군용 물품을 납품하는 업자로 서울에 들어왔다. 초기에는 소가죽과 소뼈를 일본으로 수출하고 해산물과 가마니를 수입했다. 1890년에는 야마구치오복점(포목상)을 개업했다. 경성거류민단의 전신인 총대역장의 대표를 역임했으며, 경성거류민단의 의원으로도 장기간 활동했다. 1888년에 제일국립은행의 경성출장소가 설치되는데 공헌했다. 1888년 당시 제일국립은행은 부산, 원산, 인천 등에는 지점이 있었으나, 정작 수도인 한양에는 일본 금융기관이 없었다. 이에 야마구치 다헤에를 필두로 한양에 체재하는 일본인들이 일본공사관측에 일본 금융기관 진출을 강력하게 건의하였고, 결국 1888년에 제일국립은행의 경성출장소가 설치되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