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17대 국왕 효종과 인선왕후(仁宣王后) 장씨(張氏)를 동원상하의 쌍릉 형식으로 모신 왕릉이다. 효종의 능은 원래 건원릉 서쪽 산줄기(현재 영조의 능인 원릉(元陵))에 병풍석을 갖춘 왕릉을 조영하였다가, 15년 후인 1673년(현종 14년)에 석물에 틈이 생겨 빗물이 스며들 염려가 있다 하여 여주 영릉(英陵) 옆으로 천봉하였다. 이후에 왕비 인선왕후의 능이 동원(同原)에 택정되어 앞뒤로 나란한 쌍릉을 이루게 되었다. 광중에는 석실을 쓰지 않고 회격으로 그 바닥에 처음으롤 지회(地灰)를 사용하였고, 풍수지리상 길게 뻗어 내린 언덕의 위, 아래에 각각 생기가 왕성한 정혈(正穴)에 두고자 앞뒤로 배치하여 위치상 윗쪽에 있는 효종의 능에만 3면의 곡장을 두었다. 효종의 능은 처음에는 병풍석을 둘렀으나, 여주로 천장한 뒤에는 봉분을 감싸고 있는 12칸의 난간석만을 설치하였으며, 동자석(童子石; 난간의 기둥 사이를 받치는 돌)에는 십이방위 문자를 새겼다. 상설(象設) 제도는 3계로 나누어, 상계에는 곡장 안에 망주석 2개, 혼유석 1개, 호석(虎石)과 양석(羊石) 4개를 배치하였다. 중계에는 문인석 1쌍과 마석(馬石) 2개, 장명등 1개를, 하계에는 무인석 1쌍과 마석 2개를 배치하였다. 인선왕후의 능에는 곡장만 없을 뿐, 다른 의물의 배치는 효종의 능과 똑같다. 능원 아래에는 정자각·비각·홍살문·재실이 있고,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는 금천(禁川)이 흐른다. 영릉의 재실은 조선왕릉 재실 중 기본형태가 가장 잘 남겨져 있어 보물 제1532호로 지정되어 있고, 재실 안에 심어진 수령 300년의 회양목 또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풍수지리에 의한 동원상하릉의 쌍릉 형식은 조선 왕릉 중 최초의 형태로 경종과 선의왕후의 모신 의릉(懿陵)도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천장한 뒤 비어 있던 옛 영릉 자리에는 영조의 능인 원릉(元陵)이 자리 잡게 되었고, 영릉의 제일 후보지로 낙점되었던 수원의 산릉지에는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묘인 현륭원(顯隆園)이 조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