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4(고종 14)) ~ 1917년】. 이갑(李甲). 독립운동가. 1896년 독립협회에 가입했고, 1898년 11월 만민공동회의 간부로 활동한다.이후 한국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하였다. 일본으로 건너가 세이죠학교[成城學校]와 육군사관학교 보병과를 졸업하고 1904년 귀국, 이해 9월 대한제국 육군 참령(參領)이 되었다. 1906년 10월 박은식(朴殷植)·정운복(鄭雲復)·김붕준(金朋濬) 등 동지들과 함께 서우학회(西友學會)를 창립하였다. 1907년 4월 신민회(新民會)를 창립하는 데 참여하였다. 1908년 1월 서우학회와 한북흥학회(漢北興學會)를 통합해 서북학회(西北學會)를 창립하였다. 1909년 10월 이토포살사건[伊藤博文砲殺事件] 때에 안중근과의 친분관계로 잔혹한 고문을 받고 3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신민회가 만주에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군기지를 창설하려고 간부를 제1차로 망명시킬 때 선발되어, 1910년 4월 칭다오[靑島]를 거쳐 노령으로 망명하였다.그 뒤 만주의 밀산(密山)에서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이 되엇다. 러시아에서 이강(李剛)과 함께 『정교보(正敎報)』를 발행하여 독립운동과 계몽활동을 하였다.그 뒤 시베리아로 가서 대한인국민회원동지방회(大韓人國民會遠東地方會) 회장을 역임하였다. 만주 길림성 목릉현(穆陵縣)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