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5-1922】조선 말기의 왕족, 대한제국의 황족. 흥완군 이정응의 양자이며, 사도세자의 현손이다. 1899년에 완순군(完順君)에 봉작되었고, 1910년 한일 병합 이후에 일본 정부로부터 후작으로 봉작되어 조선귀족이 되었다. 본래 선조의 아홉번째 아들 경창군 이주(慶昌君 李珘)의 9대손으로 먼 왕실의 먼 종친이었으나 흥선대원군의 둘째 흥완군 이정응(興完君 李晸應)의 양자로 선발되면서 왕실의 중요 인물이 되었다. 1875년(고종 12년) 문과 급제 후 관직이 이조참판, 승정원 승지까지 이르렀다. 갑신정변 때 병조판서로 참여했으나 왕실의 가까운 친척으로서 처벌받지는 않았다.1897년(광무 원년)에 한성은행(漢城銀行)의 창립을 주관하였고 대한철도회사 사장도 역임했다. 1902년 이후 제일은행권, 철도부설권 등을 일본에 넘긴 공으로 한일합방 후 후작 작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