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0-1874】명성황후의 양오빠.본관 여흥. 문과 급제자. 본래 민치구의 아들이었으나 민치록의 양자로 갔다. 1866년 명성황후가 왕비가 된 후 호조참판,병조판서 등을 거쳤고 1873년 명성황후를 도와 대원군의 실각에 일조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후 본격적으로 국정에 참여했으나 다음해인 1874년 폭탄이 장치된 소포를 받고 그 폭발로 양어머니 한창부부인 이씨와 함께 사망하였다. 일설에는 죽으면서 운현궁 쪽을 바라봤다는 얘기가 있다. 시호는 충정(忠正)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