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4년(고종 1) ~ 1951년】. 서재필(徐載弼). 독립운동가, 개화파의 일원으로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한 뒤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여 의사가 되었다. 일시 귀국하여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독립협회를 결성.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지속하였고 광복 후에는 미군정청고문으로 일하다가 미국에서 임종. 본관은 대구. 아버지는 서광언(徐光彦). 1883년 김옥균의 권유로 일본의 도야마 육군유년학교을 졸업한 뒤 귀국하여 조련국 사관장에 임명되었다.1884년 갑신정변에 가담하여 왕을 호위하고 수구파를 처단하고, 정변의 실패로 일본으로 망명하고 그 뒤 미국으로 망명하여 대학을 졸업한 뒤 의사 면허를 취득하였다. 갑오경장으로 신원되어 1895년 귀국하여 중추원 고문에 임명되었다. 1896년 독립신문 창간하고 이후 독립협회를 결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만민공동회도 개최하는 한편, 독립문도 세웠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는 미국에서 언론 활동으로 3.1 운동을 지원했다.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정의 고문 자격으로 한국에 돌아와 일부에서 대통령 제의를 받기도 했으나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어 출마하지 못했다. 이후 정세가 어지럽자 미국으로 돌아갔고 미국에서 노후를 보내다 1951년 86세에 사망했다.1994년 현충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