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조선박람회 개최를 앞두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관람객들을 수용하기 위해 경성협찬회에서는 경성부의 여관에 지정여관제를 두고 운영하였다. 협찬회에 소속된 지정 여관, 상점은 일정한 회비를 상납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지정 여관이 손님 확보에 유리하리라는 판단에 많은 여관이 지정 여관에 가입했으며, 그외 일반 가정집도 돈을 들여 설비를 고쳐 여관으로 개업하기도 하였다.[1]
경성협찬회는 조선인 여관 주인들을 협회에 가입시켜 협회비를 납부하게 하면서 자신들을 대신해 업무까지 맡도록 동원했다. 하지만 종로상인들과 마찬가지로 여관업자들도 박람회 투자로 수익을 내지 못했고, 결국 많은 조선인들은 빚을 갚으려 애쓰다가 서비스 산업을 떠나고 말았다.[2]
↑헨리, 토드 A. 지음, 김백영 외 3인 옮김 ,『서울, 권력 도시』, || 산처럼,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