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022-R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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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swhdgns08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11월 30일 (수) 20:34 판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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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창덕궁

Story

창덕궁은 조선 제3대 태종 5년(1405)에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다. 이후 지속적으로 궁궐의 전각들이 증축되면서 창덕궁의 권역과 그 규모가 확장되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경복궁과 함께 창덕궁 역시도 소실되어버렸다. 전쟁의 여파로 소실된 창덕궁은 선조 40년(1607)에 중건되기 시작하였고, 광해군 5년(1613)에 완료되어 제 모습을 되찾는 듯 하였으나 1623년 인조반정 때 인정전을 제외한 다수의 전각들이 소실되면서 창덕궁은 다시 한 번 피해를 입게 되었다.

현재 우리는 아름다운 문화재로서 서울 내의 궁궐들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지만, 이 궁들은 슬픈 역사를 경험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부산에서의 패전소식을 시작으로 왜군이 파죽지세로 북상하자, 임금인 선조와 당시 조정은 개성의 평양성으로 파천을 결심한다. 끝까지 지켜야 할 도읍인 한성을 뒤로 한 채 야심한 밤 선조와 신하들은 초라한 피난길에 올랐다. 선조가 피난을 가 있는 동안 조선의 왕들의 주요공간이었던 경복궁과 창덕궁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피해를 입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이견이 많다. 한성까지 들어온 왜군이 궁궐을 불태웠다는 설도 있고, 밤에 조용히 피난을 떠난 왕에 분노한 한성의 백성들이 궁궐을 불태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록에도 궁궐이 언제 어떻게 피해를 입었는지 대해서는 확인이 어려우며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당시 조선의 불안정했던 정세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다. 또한 한양의 궁궐들이 모두 불 탄 이후에도 선조와 광해군은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을 중건하였으며, 뒤를 이은 조선의 왕들도 자연스럽게 창덕궁을 사용하게 되었다. 현재의 서울 창덕궁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전각과 문들 역시 임진왜란 때 훼손되었던 것을 선조와 광해군 대에 복구한 것들이거나 인조반정 이후 중건된 것들이 다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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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22-R1-16 Story Storyline 임진왜란과 창덕궁 임진왜란과 창덕궁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S2022-R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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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22-R1-16 S2022-R1-16A hasPart 전쟁의 징조와 임진왜란의 발발
S2022-R1-16 S2022-R1-16B hasPart 선조, 개성으로의 파천을 결심하다
S2022-R1-16 S2022-R1-16C hasPart 임금이 없어진 도성과 분노한 백성들
S2022-R1-16 S2022-R1-16D hasPart 본모습을 되찾는 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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