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근대적 상설 조폐 기관인 경성 전환국(典圜局)은 1883년 7월에 설립되었다.전환국 설립 이전에는 그때그때의 편의에 따라 임시로 설치한 주전소 에서 화폐가 주조되었으나 당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상설 조폐 기관이 필요하게 되었다. 첫째, 우리나라의 화폐는 가치가 불안정하고 운송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유통량도 부족하여 개항 이후 여러 나라와 통상 조약을 체결하면서 화폐 제도를 근대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여러 선진국의 화폐 제도를 참고하여 근대적 화폐 제도를 도입하고 신식 화폐를 주조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종래의 임시로 설치된 주전소와는 달리 규모가 크고 정밀한 조폐 설비를 수용할 수 있는 독립된 상설 조폐 기관의 설치가 필수적이었다. 둘째, 다원화된 화폐 주조 사업의 관리 체계를 일원화하여 조정이 직접 주조 사업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중앙 집권적이고도 독점적으로 주화를 제조·발행함으로써 화폐 정책을 보다 안정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었다. 셋째, 개항 이후 국가 재정이 한층 더 궁핍해지고 있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다량의 화폐를 지속적으로 주조해야 할 형편이었다.[1]
당시 정부는 독일에서 신식 조폐기기를 들여오는 등 신식 주화 발행에 열의를 보였으나 ‘개국 497년’이라는 연호가 새겨진 5문과 10문 적동화, 1환 은화를 소수 발행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1886년(고종 23년) 조선 왕조는 외국과의 통상에 없어서는 안 될 근대 화폐 제조의 필요성을 느끼고 묄렌도르프의 건의에 따라 거액의 외국 자본으로 독일에서 조폐기기를 수입했다. 압인기에 의해 제조된 최초의 주화는 1888년 ‘개국 497년’이란 연호가 표시된 1환 은화와 10문, 5문 적동화였다. 이 주화들의 앞면 상단에는 태극장을 넣었고, 좌우에는 조선 왕조를 상징하는 오얏나무 가지를 교차시켰다. 뒷면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쌍룡과 조선 왕조의 개국년기가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때 발행된 화폐는 시주(詩鑄) 화폐의 구실을 했을 뿐 일반에서는 거의 통용되지 못했다. 또한 금, 은의 보유량이 절대 부족했고, 조폐 이익도 그다지 크지 않아서 최초로 발행된 신식 화폐는 얼마 가지 않아 주조가 중단되었다. 화폐 제조가 중단됨으로 인해 압인기를 비롯한 조폐기기들 역시 별다른 쓸모가 없어지고 말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