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_즉조당 일원에는 세 채의 전각이 남아 있다. 즉조당을 중심으로 왼편에 덕수궁_준명당, 오른편에 2층 건물의 덕수궁_석어당이 있다. 즉조당 옆에 운각(雲閣: 다락집 복도)으로 연결된 준명당은 덕혜옹주가 잠시 다녔던 유치원 건물로 잘 알려져 있다. 준명은 ‘다스려 밝힌다’ 또는 ‘다스리는 이치가 맑고 밝다’는 의미이다. 1897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환궁할 당시 새로 지은 전각의 하나로 대한제국 초기에는 고종이 신하나 외국사신을 접견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1901년 5월 헌종 계비 명헌태후 홍씨의 71세 기념 진찬연을 기록한 『신축진찬의궤』를 통해 화재 전 즉조당 권역의 원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덕수궁_경운당과 즉조당 및 석어당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경운당은 현재의 배치로 볼 때 준명당에 해당된다. 1904년 화재로 소실된 후 다시 건축되었으며, 『경운궁중건도감의궤』에 준명당이 그려져 있다. 1916년 고종의 총애를 받던 덕혜옹주를 위한 유치원 건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덕혜옹주가 다닐 유치원으로 사용하기 1년 전 1915년(대정 4) 3월 30일에 조사 보고한 『덕수궁원안』 속 ‘준명당’의 모습을 살펴보자. “준명당은 현존하는 건물로 중화전 뒤에 즉조당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조선식 목조단층 건물이며 지붕은 기와지붕이다. 평면은 뒤로 꺾은 ‘ㄱ’자형을 하고 있고, 본채 부분은 정면 여섯 칸, 측면 두 칸 반 규모이고 날개채 부분은 정면 두 칸, 측면 두 칸이다. 본채의 실 구성은 서측 칸부터 차례대로 온돌방 한 칸, 대청 두칸, 온돌방 두칸, 마루방 한 칸이다. 건물은 높은 기단 위에 올려져 있으며 기단으로 오르기 위해 네 단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건물 후면으로 진입하는 계단은 두 단인 것으로 보아 건물 후면의 지대가 전면의 지대보다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주위 담장은 연와담이었고, 협문이 두 개 있었다. 건물 북측의 지재다 더 높아 북측 영역과의 경계면에 세 단의 화계가 마련되었고, 그 중 일부에 열 단의 돌계단이 마련되어 북측 영역과 연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