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6년 ~ 1921년】 일본의 외교관. 1884년 갑신정변 발발 당시 청국 톈진 주재 영사로 있으면서 청측의 동향을 기민하게 파악, 이토 히로부미 등에게 일본의 대응책을 건의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외교관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1892년 9월, 외무성 통상국장으로서 조선에 건너 와, 당시 조일 간 최대의 외교 현안이었던 방곡령 배상 문제로 독판교섭통상사무 민종묵과 교섭하였으나 결렬되자 귀국하였다. 아관파천 기간인 1896년 7월에 주한일본공사로 부임하였다. 공사 부임 이후 조선 정부 내 친일세력 양성 및 구미 외교관들과의 관계 개선에 주력하였다. 또한 당시 독립협회 회장이었던 서재필과 접촉하여 독립문 건립기금 조성에 협조하고 독립신문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도 하는 등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여건 조성에 힘썼다.